東西古今

아빠와 라면

뚜르(Tours) 2018. 12. 26. 08:55

 


저는 기억이 나질 않지만,
어린 시절 아토피가 심했다고 하더군요.

하나뿐인 딸을 걱정하던 엄마는
건강 음식, 웰빙 마니아가 되셨고,
엄마의 엄명으로 우리 집은 인스턴트 음식이
금지되어 버렸습니다.

다행히 지금은 아주 건강해서 아무거나 잘 먹지만
엄마는 아직도 음식에 예민하십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건 아빠가 라면을 아주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어느 날 엄마가 친구들과 모임이 있어
조금 늦어진다는 소식에 아빠는 후다닥 슈퍼에 가서
라면 2개를 사 오셨습니다.

"아빠. 엄마가 알면 난리 날 텐데."
"괜찮아. 안 걸리면 될 거야!"

그리고 아빠의 눈물겨운 고행이 시작되었습니다.
작은 버너와 냄비를 준비하고, 냄새로 들킬까 싶어
추운 베란다에 쭈그려 앉아 엄마가 안 계시는
시간을 이용하여 라면을 끓여 먹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라면을 끓여 드시고
엄마 몰래 설거지까지 마친 아빠는 저를 향해
손가락으로 승리의 V자를 척 내밀며
마치 전쟁터에서 이겨 돌아오는 장수의
표정을 짓는 것이었습니다.

저희 아빠 너무 귀여우시죠?
근데 아빠.
사실 엄마는 아빠 라면 먹는 거 다 알고 있었답니다.
베란다에서 그러는 게 너무 애처로워서
이번 한 번만 봐준 거라네요.



행복은 밖에서 오는 것도 아니며,
멀리 떨어져 있는 것도 아닙니다.
지금, 이 순간 아주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고작 라면 하나에서도 사랑과 기쁨을
발견할 수 있듯이 말입니다.


# 오늘의 명언
어리석은 자는 멀리서 행복을 찾고,
현명한 자는 자신의 발치에서 행복을 키워간다.
– 제임스 오펜하임 –

 

<따뜻한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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