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풀이 흔들리면
김점용
한밤중에 고양이 한 마리를 놓아 주었다
멀리 가서 잘 살라고 놓아 주었다
고양이는 강아지풀 사이로 뛰어갔다
돌아오면서 돌아보았다
강아지풀이 흔들렸다
자세히 보니 고양이 꼬리였다
자세히 다시 보니 강아지풀이었다
길가에 쌓아놓은 비료 부대를 자세히 보니
주차된 트럭 뒤꽁무니였다
다시 자세히 보니 친환경 비료 부대가 맞았다
고양이를 버리고 돌아오는 길에
머리카락을 길게 풀어헤친 키 큰 귀신을 만났다
깜짝 놀라 다시 보니
무덤에서 뻗어내린 칡넝쿨이었다
치매 걸린 어머니를 요양원에 맡기고 오는 길이었다
나를 맡기고 오는 길이었다
ㅡ계간『문학과 사람』(2018년 겨울호)
출처 : 블로그 ‘하루 시 한 편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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