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한 편의 詩

9월의 당신에게 띄우는 편지 /이채

뚜르(Tours) 2024. 9. 1. 09:02

 

 


9월의 당신에게 띄우는 편지   
/이채



꽃피는 봄날엔 할말도 많았겠지요
꿈은 땀으로 흐르고
땀은 비처럼 내렸어도
어느꽃도 만날 수 없는 그런날이 있었겠지요
기도하는 꿈빛으로 아침이 찾아와도
누워서도 잠들 수 없는 그런밤이 있었겠지요

별을 보고도 잠언을 읽지 못하고
어리석은 잣대로만 재고 산 가벼움에 대하여
고독한 진실과 홀로 견딘 무거움에 대하여
무심한 달빛창 바라보며 한숨도 지었겠지요
우연히 들었습니다
당신의 허전한 기침소리를

당신이 가을로 깊어갈 때
노을처럼 내리는 그리움이 있다면
잉크처럼 번지는 외로움이 있다면
길어진 시간의 무게 때문입니까
얇아진 낙엽의 부피 때문입니까

9월의 당신이여!
삶에 대해 이야기하기엔 아직 이르니
이 저녁 노을이
저 들녁 낙엽이
왜 이렇게 쓸쓸하냐는 말은 조금 늦어도 좋겠습니다

우연히 보았습니다
타도록 몸을 말리는 울안의 빨간 고추가
번연히 가루가 될 것을 알면서도
제 몸 한번 뒤척이지 않고
버젓이 누워있음을
그렇게 질기게 견뎌내고 있음을
나는 보았습니다
9월의 당신이여!

'이 한 편의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산국화 / 류인순  (0) 2024.09.05
구월 찬가 /안영준  (0) 2024.09.02
사랑하는 그대 /김용호  (0) 2024.08.31
폭염 아래 / 류인채  (0) 2024.08.28
처서 /이재봉  (0) 2024.0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