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한 편의 詩

폭염 아래 / 류인채

뚜르(Tours) 2024. 8. 28. 16:39

 

 

폭염 아래   / 류인채

 

풀 뽑는 여자들이 언덕에

앉아있다 머리에 흰 수건을 두른 펑퍼짐한

엉덩이들이 이마에 불볕을 이고 잡초를 뽑고 있다

뽑혀나간 쇠비름 토끼풀 바랭이가 볕에

시들고 있다 손톱에 풀물이 든 여자들이 달아오른

호미를 팽개치고 나무 그늘에 들고

폭염이 여자들을 놓치고 있다

손부채를 부치는 수다들이 목에 두른 수건을 풀어 땀을

닦는다 깔깔깔 한바탕

웃어젖힌다 된더위가

한풀 꺾인다 풀어 놓은 잡담이 순식간에

웃음의 무게를

들어 올리고 여자들이 애드벌룬처럼 둥둥 떠오른다

폭염이 뻘쭘하게

그늘 밖에 앉아 있다

- 류인채,『소리의 거처』(도서출판 황금알,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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