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역 가락국수 /공광규
철로가 국수 가닥처럼 뻗어 있다
철로에 유리창에 승강장에
갑자기 쏟아지는 소나기가 국숫발을 닮았다
청양에서 대치와 한티고개를 울퉁불퉁 버스로 넘어와
김이 풀풀 나는 가락국수를 먹던 생각이 난다
부산행 열차를 기다리던 열 몇 살 소년의 정거장
소나기를 맞으며 뛰어오던
열 몇 살 소녀가 있었던 대전역이다
사십 년 전 기억이
모락모락 수증기로 피어오르는 국수그릇
선로도 건물도 오고가는 사람도 많아지고
국수그릇과 나무젓가락이 합성수지로 바뀌었지만
국수 맛은 옛날처럼 얼큰하다
가락국수가 소나기처럼
첫사랑처럼 하나도 늙지 않았다
ㅡ 시집 『파주에게』(실천문학사,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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