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한 편의 詩

저 별빛 / 강연호

뚜르(Tours) 2024. 9. 11. 21:26

 

 

저 별빛   / 강연호

 

그리움도 버릇이다 치통처럼 깨어나는 밤

욱신거리는 한밤중에 너에게 쓰는 편지는

필경 지친다 더 이상 감추어둔 패가 없어

자리 털고 일어선 노름꾼처럼

막막히 오줌을 누면 내 삶도 이렇게 방뇨되어

어디론가 흘러갈 만큼만 흐를 것이다

흐르다 말라붙을 것이다 덕지덕지 얼룩진

세월이라기에 옷섶 채 여미기도 전에

너에게 쓰는 편지는 필경 구겨버릴 테지만

지금은 삼류 주간지에서도 쓰지 않는 말

넘지 못할 선,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어 너에게

가고 싶다 빨래집게로 꾹꾹 눌러놓은

어둠의 둘레 어디쯤 너는 기다리고 있을 테지만

마음은 늘 송사리떼처럼 몰려다니다가

문득 일행을 놓치고 하염없이 두리번거리는 것

 

저 별빛 새벽까지 욱신거릴 것이다

- 강연호,『잘못 든 길이 지도를 만든다』(문학세계사,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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