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리상식

국내 신영성운동 현황과 대 책- 1. 국내 현황

뚜르(Tours) 2009. 3. 9. 00:25

국내 신영성운동 현황과 대 책

 

 1. 국내 현황

최근 주교회의 신앙교리위원회는 「건전한 신앙생활을 해치는 운동과 흐름 II」라는 소책자를 발간해 이른바

「신영성 운동」에 대한 심각한 우려를 표시했다. 이에 앞서 교황청은 올초 「뉴에이지에 대한 그리스도교적

성찰」을 발표해 뉴에이지 운동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촉구했다.
이들 신영성 운동은 근본적으로 종교적 차원을 지니고 있으며 여러 측면에서 그리스도교 신앙과 충돌하고 있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신자들이 이를 알지 못한 채 이 운동들에 참여하고 있다는 점에서 보다 세심한

식별과 주의가 요구된다.
이에 따라 수 차례에 걸쳐 국내 신영성 운동의 현황을 점검하고 이에 대한 적절한 사목적 대처 방안들을 모색

해보고자 한다.

한때 길을 걷다 보면 『도(道)에 관심 있으십니까?』하고 다가서는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이러한

「도인」들이 요즘 줄어든 것은 어쩌면 이제 길거리로 나서지 않아도 될 만큼 도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늘었

다는 증거인지도 모른다.
뉴에이지 운동, 일부 기 수련 운동 등 이른바 「새로운 영성」 운동은 이미 80년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급속

하게 확산되기 시작했고 상당수 천주교 신자들 역시 개인의 육체적 건강과 정신적 안정을 약속하는 이들

운동에 빠르게 매료됐다.
이러한 추세 중의 대표적인 것이 바로 명상, 선, 요가 등 동양적 심신수련법의 확산이다. 불교의 전통적인

수행 방법인 선(禪)은 이제 도심 곳곳의 선원들을 통해 대중 속에 뿌리를 내렸다. 방학, 휴가철이면 며칠씩

걸리는 참선 프로그램에 사람들이 몰려든다. 더욱이 이런 수양법은 패션, 미술, 음악 등 엔터테인먼트 분야

에서 하나의 독특한 문화 코드로 일상 생활 속에 파고들었다.
기(氣)수련은 더 광범위하게 확산됐다. 정치, 사회적 이슈들이 사라지고 개인의 안녕에 관심이 집중되면서

건강에 대한 욕구와 관심이 늘어났고 정신적인 요소를 통해 육체의 건강을 다스린다는 기 수련이 폭발적으로

확산됐다. 정확한 수치는 없지만 국내 기 수련 인구는 수백개 지부에서 수백만명이 기 수련에 열중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일부에서는 21세기를 살아가기 위해서는 두 가지를 할 줄 알아야 한다고 한다. 하나는 인터넷, 다른 하나는

명상이다. 인터넷이 디지털 도구라면 명상은 아날로그식 무장이라는 것이다.
특히 지식층, 엘리트층의 관심은 폭발적이다. 디지털 시대에 대한 저명한 분석가 중 하나인 데이비드 브룩스는

명상을 위해 몰려가는 엘리트들의 행렬을 「소울 러시」(soul rush)라고 불렀다.
최근 틱낫한 스님의 방한에 대한 기형적인 관심 역시 이러한 추세를 반증한다. 이제는 대기업 치고 선이나

명상 등을 교육 프로그램으로 마련해 두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이고 동호회들도 우후죽순처럼 늘어나고 있다.
대중문화계는 그야말로 뉴에이지의 보고라 할 만하다. 뉴에이지라는 용어 자체가 하나의 장르로 인정받고

있는 대중음악과 관련해 인기 있는 TV 드라마, 영화, CF 등에는 예외 없이 뉴에이지 음악들이 삽입됐다.

출판계에서 뉴에이지 계열 작품들이 베스트셀러로 자리잡은 것도 오래이고 영화에서는 외국 영화 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수많은 뉴에이지 경향의 작품들이 나왔다.
박찬호를 비롯한 프로 스포츠 선수들이 명상을 통해 집중력을 키우고 마음을 다스림으로써 성적 향상을

기하고 있다는 소식도 심심치 않게 듣는 것이 요즘 세태이다. 젊은 여성들의 가장 큰 관심사인 다이어트와

관련해서 요가 등은 엄청난 잠재력을 갖고 있는 주요한 산업의 하나로 자리잡고 있기도 하다.
이처럼 동양적 수련법을 통해 육체와 정신의 건강을 지키려는 노력은 하나의 시대적인 추세로 보인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생활 체육으로서의 운동이 조금만 깊이를 더하면 종교적인 차원으로 넘어간다는

점이다. 바로 이런 관점에서 전문가들은 이를 「신영성 운동」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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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국내 신영성운동 현황과 대책 - 대중문화와 신영성운동

대중매체통해 교묘히, 점진적 확산

교회안에서조차 영화.음반 대여
‘신앙에 해악’구체적 지침 필요

『어떤 것이 뉴에이지 음악인가요? 그러면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뉴에이지 음악을 들으면 안되나요? 뉴에이지

영화는 또 어떤 것인가요?』
현대 세계의 문화를 좌우하는 것은 대중매체를 매개로 한 대중 문화 현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늘날

뉴에이지 문화 현상들은 바로 이러한 대중 문화를 매개로 확산됐다고 할 수 있다.
음악의 경우 뉴에이지는 하나의 대중적 음악 장르로 자리 잡은지 오래이다. 특히 사회가 불안하고 경제가

침체될 수록 정서적인 안정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심리는 자연을 노래하고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뉴에이지 경향의 음악들에 더욱 매료된다고 한다.
이번 달에는 유난히 뉴에이지 음악으로 곳곳의 공연장이 성황을 이뤘다. 세계적인 뉴에이지 음악가인

데이비드 랜츠, 동양적 감성을 뉴에이지 음악에 접목시켰다는 일본인 피아니스트 유키 구라모토, 한국인

피아니스트 이루마 등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음악가들이 공연을 가졌다.
인기 TV 드라마나 CF에서는 뉴에이지 계열의 음악들이 자주 애용되고 영화에서는 유령, 영혼 등 접신주의나

영매 사상을 담은 내용이나 ET 이후 외계인들과의 접촉, 투쟁을 그리거나 신적 존재로서의 외계인에 대한

묘사 등이 SF적인 상상력을 바탕으로 쏟아졌다. 컴퓨터 게임에서는 우주를 배경으로 외계 종족간의 전투를

벌이거나 신들의 전쟁을 모티브로 하는 것들이 셀 수 없을 정도이고 출판계에서도 전생과 환생을 다룬 책들,

수련을 통한 영적 성장, 초능력 계발 등을 주제로 한 책들이 베스트셀러나 스테디셀러 목록에 빠지지 않고

있다.
물론 출판, 영화, TV, 음악 등 각 문화 분야에서 이뤄지고 있는 활동과 문화 상품들이 모두 신영성 운동의

한 부분으로서, 종교적 성향을 지닌 뉴에이지 운동으로 분류할 수는 없다. 모든 문화 현상에서 뉴에이지의

영향을 받지 않는 분야가 거의 없기에 단순히 뉴에이지를 표방한다고 해서 이를 배척한다면 대부분의 문화

현상들을 거부해야 하는 어려움에 부딪히게 된다.
실제로 교회 안에서도 뉴에이지적인 경향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영화나 음반 등을 신자들에게 대여하거나

권고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일부에서는 그리스도교계의 이같은 우려에 대해 그것은 단지 이익을 창출하기

위해 새로운 문화 상품들을 찾아나서는 대중매체의 상업성과 결합된 현대 문화 상품의 한 분야에 불과하며

따라서 이를 사탄 숭배자들의 악의적 음모라고 규정하는 것은 비약이라고 반박한다.
하지만 분명히 이러한 뉴에이지적인 문화 현상들 중에는 종교적인 요소들이 게재돼 있는 사례들이 발견되고

있으며 더욱이 그것이 대중들을 대상으로 하는 대중 매체들을 통해 교묘하고 점진적으로 확산되고 있기

때문에 더 세심한 분석과 대처 방안의 마련이 필요하다. 이제 교회의 대처는 뉴에이지를 비롯한 신영성

운동이 신앙에 해악을 미칠 수 있다는 원론적인 입장 표명에서 더 나아가야 한다. 즉 음악, 영화, 미술,

영상 매체, 인터넷, 컴퓨터 게임 등등 각 분야별로 신앙에 해악을 미칠 수 있는 요소들을 정밀하게 검토하고

신자들에게 지침을 마련해주는 구체적인 작업을 해야 할 것이다.

 

3. 과학과 신영성

‘종교-과학’ ‘물질-정신’ 통합 시도
“예수 그리스도는 외계인” 주장
‘새롭고 좋은 과학’오해 야기

모든 분야에서 통일과 통합을 추구하는 뉴에이지 사상은 인간의 정신세계와 과학을 통합하려고 시도한다.

뉴에이지의 추종자들은 종교와 과학, 물질과 정신을 분리된 실체로 보지 않고 하나로 통합시키려고 시도하

면서 그럼으로써 인류가 평화로운 새 시대를 맞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들에 의하면 과학과 종교는 서로

대립되는 것이 아니라 통합될 수 있는 것이다.
흔히 뉴에이지 과학은 우리나라에서는 「신과학」(新科學)이라는 이름으로 소개되고 있다. 이는 기존의

과학이론으로는 설명하기가 어려운 현상들에 대한 연구를 총칭하기도 한다. 연구대상은 인간의 초능력,

텔레파시통신, 무한동력, 공간이동, 공중부양, 물질변환, 물질창조 등으로 기존의 과학의 틀을 벗어나 있다.
미국의 우주 계획을 선도하고 과학의 대중화를 이끈 칼 세이건은 자신의 저서에서 사이비 과학의 폐해를

지적하면서 사이비 과학이 득세할 때 우리 사회가 미신과 불합리에 만연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사이비

과학의 한가운데에 뉴에이지 과학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종종 신과학으로 불리움에 따라 이를 새롭고

좋은 과학으로 오해하는 경향이 있는 것이다.
뉴에이지는 과학적인 면에서 물리학, 생물학, 정보학, 심리학 등을 광범위하게 활용하며 건강을 위한 약품,

예술, 우주적 종교, 영지주의, 밀교, 신비적 기술학, 새 세계 질서, 육체 치료법, 영적 치료법 등을 사용한다.
특히 우주비행물체, 즉 UFO나 외계인의 존재를 믿고 있다. 인간은 우주의 법칙에 개입돼 있으며 모든 것은

우주에 의해 지휘되고 지배된다고 믿는다. 그래서 지구의 인간과는 다른 영적인 차원에 있는 존재, 즉 외계인

들이 여러 항성에 살고 있어 이들이 지구의 인간들에게 앞선 지식과 영적 지혜를 전해준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사고는 뉴에이지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는 다양한 대중매체들을 통해서 현대인들에게 전파되

고 확산되면서 일상화시키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일부 사이비 종교 집단에서는 이러한 사상을 바탕으로

실제로 외계인을 맞이하는 준비를 갖추거나 예수 그리스도를 외계인이라고 주장하기도 하며 생명과학의

발달을 빌미로 인간을 복제한다는 계획까지 추진하고 있다.
아울러 이들은 이전에는 종교적인 영역에 이는 초자연적인 종교 현상들 역시 과학이 고도로 발달하게 되면

영향력을 가질 것으로 보인다.
한때 우리 사회에서도 유행처럼 번졌던 전생, 환생, 윤회에 대한 가설 역시 최근에는 심리학을 토대로 한

과학적 연구로 이러한 사상들의 기초를 뒷받침하려는 시도가 있어 이 사상을 사회적으로 인정하려는 경향

까지도 보이고 있다.
뉴에이지 운동은 인간의 내적 능력을 계발해 우주의 차원에 도달하는 것을 구원으로 확신한다. 이처럼 인간

의식의 확장으로 신비적인 것에 도달하려는 뉴에이지 운동은 의식 확장을 위해 여러 종교에서 나타나는

요소들과 과학, 심리, 기술, 정신 분석 등을 혼합하고 있는 것이다.

 

 

4. 환경운동과 신영성운동
뉴에이지 신봉자들은 자연은 하느님의 피조물이 아니라 인간이 섬겨야할 존재라는 의식을 갖고 있다.

환경보호 차원넘어 종교화
그리스도교 가르침 위배

자연 중심주의 세계관
뉴에이지에서는 자연 중심주의의 세계관을 지닐 것을

 강조한다. 자연 중심주의 운동으로서의 뉴에이지는 신

중심의 사유나 인간 중심의 사유 방식을 거부하면서

자연에 대해서도 새로운 시각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간 역시 자연의 일부이기 때문에 만물의 영장이라는

자기 중심적인 사고 방식으로 마음대로 자연을 정복하고 파괴하고 개발, 이용해서는 안되며 자연과의 조화와 합일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뉴에이지 운동가인 헌터(Bob Hunter)는 『자연은 신의

작품의 물질적인 총체』라며 『자연의 일부로서 우리의 작은 자아들로 구성된 개별적인 개체들로부터 우리의

자아(자연)를 볼 때 우리는 사실 자연이 우리 자신임을

깨닫게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우리의 모태인 지구는 수동적이지 않다』며 『지구의 에너지들과 자신을 함께 만드는 것은 당신

안에 있는 신성을 해방시키는 것이며 존재의 보다 높은 상태로 올라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자연을 통해 신의 목소리를 듣고 세계를 이해할 때 인간에게 내재된 자연의 무한한 능력이 발휘될 수 있다는 것이 이들의 생각이다. 그리고 이러한 잠재능력은 특정한 비술이나 영술을 통해 발휘된다. 이러한 입장은

흔히 생태학주의로 나타난다. 뉴에이지는 동양 종교의 중요한 요소인 땅의 모성적인 면을 강조하면서 땅의

여신 「가이아」(Gaia)에 관심을 보이고 땅의 새로운 신성화 작업을 통해 자연 보호, 환경 보호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인다.
‘하느님 중심’망각
종교 역시 뉴에이지에서는 조직화된 체계 논리나 이성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자연과 우주에 대한

경외심과 두려움에서 출발한다. 즉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다루는 생태학적인 것에서 유래를 찾았다. 자연의

성스러움에 대한 새로운 주의와 관심은 인간이 우주의 중심이라는 인간 중심사상에서 자연 중심사상으로

옮아가고 인간은 단지 이 자연의 한 부분, 즉 전체의 일부, 우주의 일부가 되므로 뉴에이지에서는 인간 중심

사상이 그 의미를 잃게 된다.
종교 역시 하느님과 인간과의 관계가 아니라 환경과 하느님과의 관계가 되고 만다. 이렇게 볼 때 종교는

하나의 우주론으로 바뀌게 되는 위험성을 안고 있다. 이들은 또 밤낮, 사계의 순환이라는 자연의 법칙과

마찬가지로 인간을 포함한 만물의 생명도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생명으로 이어지는 윤회의

과정을 겪는다고 주장한다. 결국 이들에게 모든 것의 중심은 자연이기 때문에 하느님에 대한 신앙을 바탕

으로 하느님 중심의 삶을 살아갈 것을 가르치는 그리스도교와는 배치된다.
무분별한 자연 훼손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뉴에이지운동의 환경보호에 대한 적극성은 삶의 터전인

자연을 보호해야 한다는 입장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될 수 있다. 하지만 이처럼 환경보호의 중요성을 강조

하는 것을 넘어서 이를 종교화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들이 생각하는 자연은 하느님의

피조물이 아니라 인간이 섬겨야 하는 존재라는 인식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으로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에

서는 결코 용납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5. 사목적 대처
명상과 영성의 강력한 전통을 보유하고 있는 가톨릭 교회의 영적 유산들을 사목적인 프로그램으로 개발, 보급해야 한다.

영적 욕구 부응하는 다각적 대안 시급
수련 목적이나 내용 주의해야
전통적 교회 영적 유산 활용

신영성 운동에 대한 교회의 입장은 한 마디로 생활

 체육, 즉 단순히 건강과 육체적 평안을 얻기 위한 것일 때에는 문제가 없지만 그것이 갖고 있는 종교성에 대해서는 각별히 유의하고 식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신영성 운동에 대해 교회가 우려하는 것은 이 운동이 신자들 사이에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확산되고 있으며 그로 인해 신앙 생활을 중단하는 사례가 적지 않게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확산되고 있는 기 수련 운동과 관련해서, 천주교 신자들이 유난히 이에 몰입하는 경우가 많은 것은 현대인들의 영적인 욕구와 종교적인 체험에 대한 욕구와 깊이 관련돼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즉 체계화된 교리와 전례 중심의 가톨릭이 때로는 이러한 영적, 종교체험 욕구를 충분히 만족시켜주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교회가 그 정체성을 분명하게 유지하면서도 물질문명에 젖어 있는 만큼 오히려 더 절실한 영적 체험의 욕구를 고려하고 이에 부응할 수 있는 사목적인 대책 방안들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신영성 운동에 대해서 교회는 그것이 단순히 생활 체육의 성격을 갖고 있는 경우에 이에 참여하는 것은 하등 문제가 되지 않지만 생활 체육의 차원을 넘어설 때에는 그리스도교 신앙에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우려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교황청이 최근 발표한 「예수 그리스도, 생명의 물을 가진 분- 뉴에이지에 대한 그리스도교적 성찰」에서도 『일부 뉴에이지 그룹들은 신학이나 영성 지식이 부족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점차적으로 일종의 잘못된 예배로 유혹한다』며 『명상방법을 배우는 것은 문제가 없지만 수련의 목적이나 내용 등은 분명히 주의를 기울

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신영성운동을 연구하는 여러 전문가들은 이것이 새로운 문화적 현상이기 때문에 기존 종교들이 그 흐름

자체를 부정하거나 참여를 금지하는 것만으로는 적절한 대책이 될 수 없으며 현대인들의 영적인 욕구와

신비 체험에 대한 욕구를 고려해 사목적인 대안들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특히 가톨릭 교회의 경우, 이미 전통적으로 간직하고 있는 많은 영성적 유산을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즉 위대한 수도회들을 포함해 명상과 영성의 강력한 전통을 보유하고 있는

가톨릭 교회의 영적 유산들을 현대인들의 영적 욕구에 맞게 사목적인 프로그램으로 개발, 보급해야 한다는 것이다.
신영성 운동이 무조건적으로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것은 이미 주지의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이 여러

가지 측면에서 그리스도교 신앙과 충돌하며 자칫 신자들의 건전한 신앙 생활에 심각한 부작용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따라서 가톨릭 교회가 이러한 문화적인 경향에 대해서 충분히 주의를 기울이고 신자들에게 경각심을 불어

넣어주는 것은 일차적인 대비책일 것이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현대인들이 지니고 있는 영적인 욕구에 부응

할 수 있는 다각적이고 현실적인 대안들을 마련하지 못한다면, 금지와 비판 만으로는 신영성 운동의 도전에 효과적으로 대처한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박영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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