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 그 뒤안길

잊을 수 없는 6.25

뚜르(Tours) 2009. 6. 25. 18:04

 

대야속에 양동이와 옷, 식기를 이고 갓난아기에게는 젖을 물리고 서울을 떠나

남족으로 피난가는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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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공군의 출현으로 가장큰 피해자는 피난민들이다.

어머니와 아기들은 38선 가까이에 있는 의정부에서 남쪽으로 피난가는 중이다.

이번이 세번째 피난길이라면서 서울에 가서 열차나 추럭을 얻어 타 보겠다는 희망을 안고 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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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등포에서 남쪽으로 가는 기차는 피난민으로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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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이 없는 피난민은 열차에 매달리지도 못하고 한길을 따라 걸어 가야만 한다.

길에는 이동하는 군용차량으로 꽉 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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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관공서 앞에는 사무집기, 전선들을 밖에 내다 놓고 추럭이 와서 실어가기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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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긴 한강다리 밑으로 좁은 가교가 있고 피난민들이 줄을 서서 건너 오고있다.

다른 피난민들은 부서진 뗏목으로 짐과 소마차를 싣고 건너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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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밤에도 피난길은 계속 되고있다.

이 사진을 찍을즈음에는 이미 서울의 반은 적 수중에 들어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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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던 집을 허물고 방어선을 구축해야한다는 말을 듣고 소녀가 울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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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후 불로도저가 집을 허물고, 소녀는 차마 볼수가 없어서 뒤돌아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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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두사진은 흥남시의 중심부와 부두가이다.

폭파준비를 마치고 마지막 군인이 빠저나온 순간이다.

공장들은 모두 멈추어 있었고, 여기저기에 휘어진 철골들이 보였고, 굴뚝에서 연기가 사라진지 오래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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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에 정박한 배에 승선하려고 벌떼처럼 몰려있는 피난민들.

여자, 남자 할것없이 길가에 널여있는 미군철모를 주워서 쓰고있다. 

모두 흥남시를 떠나고 싶어하고, 그렇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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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파되는 흥남부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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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사한 병사들을 위하여 기도 드리는 군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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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두사진,  장진호 철수에서 겨우 살아남은 병사들은 거의 다 심한 동상에 걸려있어서

오사카병원에서 치료받고 있는 중이다.

설탕물에 프로케인을 섞어서 투입함으로서 피순환을 돕고 아품을 덜어준다.

대부분의 환자들은 동상부위에 염증이 생기고 혈액순환이 순조롭지 못해 결국 절단하는 경우도 있고,

혈장이 폐나 간으로 가서 막히는 경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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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네시주 스킨포크시,

1950년 7월 5일 서정리에서 최초로 전사한 미군병사 케넷 쉬드릭(Kenneth Shadrick) 을 추모하는

행사가 벌어지고 있다. 전사한 쉬드릭의 나이는 18세 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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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젊은이들 수천명이 라크랜드 공군기지에 모여들어 줄을 서 있다.

육군 보병으로 영장받아 가느니 공군에 자원입대하려고 하는 젊은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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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군기지 막사 주변에 쓰레기를 줍고있는 지원입대 예비자들.

뒤에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은 자원입대 심사를 받으러 온 젊은이들로 각자 텐트 배정을 받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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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복을 지급받고있는 자원입대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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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서 해군에 자원입대 하려는 젊은이들.

이층에 줄서있는 젊은이들은 해병대 지원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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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보급품이 부족해서 군화 대신 임시로 신고온 운동화를 그대로 신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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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하게 4 - 5만명에게 입대영장이 발부될것 이라는 뉴스에 라크랜드 공군기지에는 연일

공군지원입대자들로 넘처나고있다.

보병으로 끌려나가 한국전선으로 가기를 원하지 않기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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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미네소타대학 축구팀 주장을 지낸 데비드 스크린이 여자친구와 함께 심각한 고민에 빠저있다.

두달전에 주방위군에 지원입대 했는데도 이번에 정규군에서 소집영장이 나왔기 때문이다.

파티에 참석한 학생들 중에 4명은 이미 영장을 받았고, 16명은 졸업과 동시에 받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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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상으로 머리를 동여맨 포로를 위시해서 수백명 중공군 포로들이 남쪽으로 걸어가고있다.

한달이면 1만명도 넘게 중공군들이 투항해오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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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군들이 적군과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뒤에 한국 병풍을 처 놓고 커피타임을 즐기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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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과 600야드 거리를 두고 있음에도 털키군인들이 오후 한때를 즐기고 있다.

주나(Zurna)라고 하는 후륫같이 생긴 악기와 전통 북으로 흥을 돋우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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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군 포병이 한국 소녀를 안고 미국만화를 보면서 행복해 하고있다.

둘 다 영어를 읽을수는 없으나 그림만 보고도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