東西古今

이어령의 한국인 이야기(12)

뚜르(Tours) 2009. 9. 26. 18:12

어렸을 때 읽은 르나르의 『박물지』생각이 난다.
그중에서도 <3333333---개미의 무한한 행렬>이라는 글이 기억에 생생하다.
처음에는 무슨 뜻인지 잘 몰랐지만 3을 왼쪽으로 눕혀 놓고 보면 허리가 잘록한 영락없는 개미다.
시대가 변해서인지 요즘 아이들은 3자를 오른쪽 방향으로 돌려서 본다.
그래서 1자는 깃대고 2는 물 위에 떠있는 우아한 백조인데 3만은 발가벗은 엉덩이의 두 볼기 모양이 되어 이미지가 좋지 않다.

하지만 한자로 쓰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내 川자밖에 모르던 시골 농부가 편지글을 읽을 줄 몰라 애를 쓰다가 三이라는 날짜를 발견하고는
<川자가 여기에 누워 있는 걸 몰랐구나>라고 한 서당 아이들의 유머,
한자의 三자는 어느 방향으로 돌려놓든지 냇물이 되어 백조쯤은 거뜬히 띄울 수 있다.

그렇지.
한국인이 좋아하는 수는 정말 3이 아니라 옛 시절대로 三이라고 써야 어울린다.
돈이나 물건을 세는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 그것은 <세 살!>이라고 나이를 세는 귀여운 우리 아기의 손가락처럼
신성한 상형문자다.
그래서 우리는 만세를 불러도 三唱이고 노래를 불러도 삼박자다(일본은 이박자다).
그리고 일본 씨름 스모는 단판 시합인데 한국의 씨름은 삼세판이다.

우리가 三千里 금수강산에 태어나게 된 것도 삼신할머니 덕분인데,
이때의 三神은 유교 불교 도교의 삼교를 어우른다.
어느 종교와 관계없이 그 중심에는 하늘 땅 사람이 하나가 되는 三才 사상이 있다.
그래서 한국의 국기에는 태극기가 그려져 있지만 일상생활 속의 부채에는 삼태극 모양이 그려진다.
세계에 널리 알려진 서울올림픽 엠블럼도 삼태극이 아닌가.
서양에서 기독교가 들어와도 낯설지가 않다.
삼위일체의 그 교리는 우리가 먼저 안다.

이 삼자를 한창 거슬러 올라가면 단군신화와 만난다.
그 古記에서 삼자들을 뽑아 나열하면 하늘에서 내려보낸 三危太白,천부인 세 개,
환웅이 거느리고 내려온 삼천 명의 무리, 그리고 風伯雨師隕사…
끝없는 삼 자 행렬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문제가 중요한 것은 쑥과 마늘을 먹고 忌한 끝에
三七일 만에 인간이 된 웅녀의 이야기이다.
삼칠일이란 3에 7을 곱한 수로 21일이라는 뜻이다.
시간도 삼을 단위로 쪼개어 기술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금도 산모들은 아이를 낳으면 금줄을 치고 삼칠일을 기한다.

그러고 보면 웅녀 이야기는 신화라기보다 핏덩어리로 태어난 한 생명체가
어떻게 사람이 되고 한국인이 되어가는가를 보여주는 실험보고서라고 해도 좋다.
우리는 날것을 生이라고도 한다.
흙에서 막 뽑은 무를 <생무>라고 하고, 익히지 않은 쌀을 <생쌀>이라고 한다.
그런 말투가 남아서 <생쑈>라는 점잖지 않은 말까지 나왔다.
그러기 때문에 곰과 같은 生物을 순수한 우리말로 옮기면 날(生) 것(物)이 된다.
이 날것이 김장독 같은 동굴 속에서 발효돼 잘 익어야 비로소 맛이 든다.
그러면 생자에 사람 <인>자가 붙어 人生이 되는 것이다.

곰이 사람이 되듯 세 살이 지나면 아이는 생물의 상태에서 사람이 된다.
그리고 곰이 기하는 것같이 스스로 자신을 억제하고 다스리는 <버릇>을 통해 한국인이 되어간다.
생각해보면 버릇처럼 양의성을 가진 말도 드물다.
<버릇을 고친다>고 할 때의 그 <버릇>은 나쁜 습관을 뜻하는 것이고
<버릇없다>고 할 때의 <버릇>은 예의범절처럼 좋은 의미다.
좋은 버릇, 이상한 버릇, 못된 버릇, 버릇은 자기도 모르게 문화유전자 밈으로 몸에 배어 있다가 남에게도 전파한다.
우리는 인간으로, 한국인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세 살의 냇물을 건너 하나의 인간이, 한국인이 되어가는 존재인 것이다.
삼자와 같은 무수한 문화유전자의 영향을 받으면서 세 살 때 버릇을 잘 익히지 않으면
생떼를 부리는 한국인 (용서하라 한 번만 막말을 쓰겠다), <생쑈>를 부리는 오늘의 비한국인이 생기게 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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