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한 케이블 방송에서 세계적인 탑 모델 김다울의 추모 방송(재방송)이 있었다. 지난달 19일 그녀의 비보를 듣고 놀라움과 안쓰러움 그리고 그녀의 재능을 아쉬워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그런 상실감을 느낀지 이제 겨우 한달도 지나지 않았지만 어느세 그녀의 죽음을 잊혀지고 있었다. 유난히도 많은 별이 졌던 2009년 다시한번 우리 삶에 큰 의미였던 그들을 떠올리면 삼가고인의 명복을 빌어본다.
#1. 2009년 02월 16일 추기경 김수환 선종
한국 최초의 추기경이자 정신적 지주 김수환 추기경. 비카톨릭인도 모두가 슬퍼한 성인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은 김수환 추기경이 마지막 가시는 길에서 남긴 말씀은 '사랑하라'였다. 그분의 존재만으로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 했으며 위로가 되었을 것이다. 생전 장기 기증 약속에 따라 아낌없이 나눔을 실천하셨다.
민주화에도 많은 기여를 하신 김수환 추기경은 명동성당에 경찰이 진입할 것이라고 하자 '경찰이 들어오게 되면 제일 먼저 나를 밀어내야 할 것이고, 그 다음엔 신부들을 밀쳐내고, 그 다음엔 수녀들을... 그리고 그 다음에야 학생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평생을 힘없는 사람들을 보호하고 사랑하신 분이지만 정작 본인은 많은 사람을 받았다며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나눠주지 못한 것 같다고 하시는 한결 같으신분. 이제는 어느곳에서 허전한 마을을 채울지 마음이 아파온다.
#2. 2009년 03월 07일 배우 장자연 자살
각종 드라마 조연과 CF 활동을 하던 중 KBS 2TV <꽃보다 남자>에서 '금잔디'를 괴롭히는 악역으로 악풀에 시달렸다고 한다. 꽃다운 나이에 미쳐 피지 못한 그녀의 죽음에 다시한번 명복을 빌어본다.
#3. 2009년 05월 22일 배우 여운계 사망
1962년 KBS 공채로 연예계에 발을 들인 배우 여운계는 47년간 수많은 캐릭터를 두루 소화하며 브라운관을 누볐다. 2005년에는 영화 <마파도>에 출연하며 전성기를 누렸다. 여운계는 2007년 신장암에 걸려 당시 출연 중이던 SBS TV <왕과 나>에서 하차 석 달간 치료를 받은 뒤 KBS 2TV <며느리 전성시대>에 복귀해 건재를 과시했다. 여운계는 그러나 신장암이 폐로 전이된 사실을 숨겨오다 <장화홍련>의 첫 방송을 앞둔 지난달 급성 폐렴으로 입원하면서 폐암에 걸린 사실이 알려졌다.
중화권 언론들은 MBC TV <대장금>의 수랏간 최고 상궁으로 열연한 여운계의 암 투병 소식에 '여운계는 전 아시아에서 유명한 배우며 한국에서는 데뷔한지 수십년이나 되는 영향력 있는 배우'라며 '그가 두 차례나 암에 걸리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기에 충격이 크다'고 안타까움을 표시하기도했다.
#4. 2009년 05월 23일 대통령 노무현 서거
대한민국 16대 대통령으로 인권변호사 출신으로 1988년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정치에 입문한 뒤 5공비리 특별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청문회 스타'로 떠올랐다. 1990년 '3당 합당'에 반대하여 민주당 창당에 동참하였고, 해양수산부 장관을 거쳐 2002년 새천년민주당의 대통령 후보로 제16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퇴임한 뒤 고향인 봉하마을에 귀향하였으나 재임중 친인척 비리로 조사를 받다가 2009년 5월 23일 사저 뒷산의 부엉이바위에서 투신, 서거하였다.
#5. 2009년 07월 12일 산악인 고미영 사망
유명 여성 산악인 고미영씨가 히말라야 낭가파르밧 등정 후 하산하던 중 불의의 사고로 운명을 달리하고 말았다. 그녀는 11일 오후 7시쯤 크레바스에 빠져 실종된 상태였다가 13일 사망한 것으로 파키스탄 한국 대사관에 의해 공식적으로 확인됐었다.
고미영씨는 여성 산악인으로서 8000m급 봉우리를 한 시즌에 3개나 정복한 세계 기록을 보유하고 있으며, 한국 여성 산악인으로서 기상을 세계에 알리겠다던 포부는 크레바스에 빠져 이룰 수 없는 꿈이 되고 말았다. 그녀가 등반했던
낭가파르밧은 '산중의 왕'으로 불리며 히말라야 산맥의 8000m 이상 고봉들 중에 가장 서쪽에 위치하고 있다고 한다. 지리적으로는 다른 거봉들과 떨어져 있어 정상 부위의 바람과 눈보라가 다른 어떤 봉우리보다도 강하다.
고미영씨는 1967년 전북 부안에서 태어나셨고, 2009년 7월에 히말리야산에서 하산 중 크레바스에 빠져 실종사하신, 우리나라의 유명한 여성 산악인이다.
#6. 2009년 08월 04일 수영선수 조오련 사망
대한민국 수영사의 대표적 인물로 꼽히는 '아시아의 물개' 조오련 선수가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부인에 의해 발견되어 인근 병원으로 옮겨져 심폐소생술을 1시간 남짓 받았으나 끝내 의식을 찾지 못하고 숨을 거두고 말았다.
조오련 선수는 내년에 2차 대한해협 횡단 도전을 위해 제주도에서 캠프훈련에 전념해오다 1주전부터 자택에 머물러 온 것으로 전해졌다.
해남 출신인 조오련 선수는 1970년 개최된 제6회 아시아경기대회 자유형 400m와 1500m에서 1위를 차지했고, 이듬해 벌어진 제7회 아시아경기대회에서도 자유형 400m와 1500m 1위, 200m 2위를 차지해 '아시아의 물개'라는 닉네임으로 불리워졌다. 그는 명성에 맞게 1980년에는 대한해협과 1982년에 도버해협을 무리없이 횡단, 수영실력을 세계에 과시하기도 했다.
#7. 2009년 08월 18일 대통령 김대중 서거
대한민국 제15대 대통령으로 아시아·태평양평화재단을 조직하여 이사장으로 활동했다. '아시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지도자 50인' 중 공동 1위에 선정되었으며 2000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전라남도 신안군 하의도에서 태어나 제5대 민의원과 제6·7·8·13·14대 국회의원 5선을 지냈으며, 민주화를 위해 5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국내외에서 오랫동안 민주진영의 지도자로 군사 독재 정권에 항거하였다. 이 과정에서 납치사건으로 인해 국내외에 충격을 주었다. 6월 항쟁 이후에는 평화민주당 총재로 민주화추진협의회를 구성해 민주진영을 구축했다. 그는 대한민국 민주화의 선구자였으며 해외에서는‘아시아의 넬슨 만델라’로 불리었다.
인권 향상과 남북관계의 진전에 기여한 공로로 한국인 최초로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였다. 추운 겨울에도 온갖 풍상을 참고 이겨내는 '인동초'라 비유되며 불려졌다고 한다. 연설에 능하며, 대한민국 국회에서 가장 오래 연설한 기록으로 기네스 증서를 받았다고 한다.
#8. 2009년 08월 21일 배우 이언 사망
이언은 본래 씨름 선수 출신 모델로 화제가 되었다. 1997년 제78회 전국체육대회 씨름부문 금메달을 수상했던 씨름 유망주. 하지만 그는 대학교 1학년 때 씨름을 접고 모델의 꿈을 키웠고 2000년 모델로 데뷔해 총 100여 차례나 무대에 서며 톱 모델로 이름을 날렸다.
영화 <천하장사 마돈나> , MBC 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 , KBS 드라마 <최강칠우>에 출연하여 시청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던 모델이자 배우인 이언이 교통사고로 생을 마감했다. 이언은 21일 새벽 1시 30분 오토바이 사고로 순천향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끝내 숨지고 말았다. 이언은 20일 오후 서울 르네상스 호텔에서 열린 <최강칠우> 종방연에 참석한 뒤 오토바이를 타고 귀가하던 중 21일 새벽 한남동 부근에서 가드레일을 받고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지고 말았다.
이언은 <커피브린스 1호점>에서 남자답지만 순수하고 엉뚱한 모습으로 많은 팬들의 가슴속에 파고 들었다. 얼마전 종영한 '최강칠우'에서도 자객역으로 역시 많은 사랑을 받고있었다.
#9. 2009년 09월 01일 배우 장진영 사망
1993년 미스코리아 선발대회 충남 진으로 1996년 KBS 미니시리즈 <내안의 천사>로 연기를 시작 이후 <순풍산부인과>, MBC 주말드라마 <마음이 고와야지>,<수줍은 연인> 등에서 활동하다가 1999년 영화 <자귀모>로 스크린에 데뷔, 영화 <반칙왕>,<소름>,<국화꽃 향기>,<청연>에 출연했다.
영화 <소름>에서는 남편에게 매를 맞는 여자의 끔찍한 삶을 열연, 2001년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과 제22회 판타스포르토 국제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2003년 영화 <싱글즈>로 청룡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았으며 영화 <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으로 대한민국 영화대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는 등 화려한 그녀의 연기 세계는 모든 국민이 사랑할수 밖에 없는 배우였다. 보물 1호는 가족이라는 그녀의 다정한 성품과 욕심없는 그녀는 섬세한 성격을 가진 지적이며 자상한 남자가 이상형이라는 말을 증명하듯 아름다운 사랑을하고는 세상을 떠났다.
#10. 2009년 11월 19일 모델 김다울 자살
활동명 김 니콜 다울(김다울)은 2007년 세계 무대에 데뷔한지 불과 2년 남짓 만에 전세계 모델 랭킹 45위로 급부상한 '런웨이의 혜성'이었다. 50위권 내에 동양인 모델은 혜 박(한국)과 두 쥐안(중국) 등 3명에 불과한 점에서 김다울의 세계 패션모델업계에서 위상을 알 수 있다.
서울에서 태어나 8세 때 싱가포르로 이민 간 김다울은 성장기의 대부분을 싱가포르서 보낸 덕분에 영어·중국어·프랑스어 등에 능통했다. 13세 때 싱가포르의 길거리에서 우연히 로레알 화장품 모델로 발탁된 이후 2007년 1월부터 뉴욕·파리·런던·밀라노 컬렉션 등에서 활약하며 세계적 모델로 떠올랐다. 루이비통·샤넬·모스키노 등 명품 브랜드의 런웨이와 광고 모델로 활약했으며 유명 사진작가 스티븐 마이젤의 총애를 받기도 했다.
학업에도 열정을 보인 그는 모델 활동 틈틈이 공부해 검정고시로 고교 과정을 마쳤다. 그림과 영상 작업 등에 소질을 보여 2007년 개인전을 열었다. 2008년 에세이집 '서울의 보물창고'를 발간하는 등 팔방미인의 모습을 보여줬다. 그는 지난 2월 언론과 인터뷰에서 "내 이름을 내건 의류 브랜드도 런칭하고 싶고, 세계 모델 10위 안에도 들고 싶다"고 다방면에서 활약할 의욕을 밝히기도 했다. 빅뱅의 지드래곤, 김민희의 남자 친구인 모델인 이혁수 등과도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08년 NY 매거진 '주목해야 할 모델 탑 10' 2009년 아시아 모델 페스티벌 어워즈 패션모델상 등을 수상했고, 또 지난해 모델스닷컴에서 집계한 세계 모델 랭킹 47위에 오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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