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규만 주교(서울대교구 서서울지역 교구장 대리)
예수님의 어린 시절을 알려주는 복음서는 루카와 마태오복음이다. 두 복음에 나오는 예수님 어린 시절 이야기는 공통된 부분도 있고, 다른 부분도 있다. 마태오복음은 복음서를 쓴 마태오가 가부장적 전통이 강한 유다인이었던 까닭에 다분히 남성 중심이다. 따라서 마리아보다는 요셉이 주도권을 쥐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반면 의사였던 루카가 쓴 루카복음에서는 성모 마리아가 예수님의 증언자로 드러난다. 복음서에서 예수님이 하느님 아들이라는 것을 증언하는 이들은 사도들이다. 그들은 부활사건을 통해 예수님이 하느님 아들임을 결정적으로 깨달았다. 이는 예수님 공생활 이후 이야기다. 아기 예수가 하느님 아들임을 증언하는 이는 다름 아닌 마리아다. 예수님 탄생과 관련해 루카복음과 마태오복음이 공통적으로 전하는 것은 다음과 같다. 마리아와 요셉은 둘 다 나자렛 출신으로 약혼한 사이며, 요셉은 다윗 가문의 후손이고, 성령으로 말미암아 잉태했으며, 예수님이 베들레헴에서 출생했다는 사실 등이다.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나타나 예수님 잉태를 알려주는 루카복음 1장 26-38절은 마리아가 어떤 분인지를 잘 알려주는 굉장히 중요한 자료다. 특히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38절)는 인류 역사를 바꾼 장면이다. 이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매달려 돌아가실 때 아버지 하느님께 바쳤던 기도, 즉 "아버지께서 원하시면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제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십시오"(루카 22,42)와 꼭 닮았다. 내 뜻이 아니라 아버지 뜻대로 하라는 것이다. 마리아와 예수님의 철저한 순종은 아담과 하와의 불순종으로 인해 바뀐 역사를 다시 되돌려 놓았다. 루카는 복음서에서 요한 세례자의 탄생과 예수님의 탄생을 은근히 비교한다. 물론 둘 다 기적적 탄생이다. 다만 요한 세례자는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늙은 엘리사벳이 잉태한 반면 예수님은 동정인 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했다. 어느 것이 더 기적적일까. 또 요한 세례자의 아버지 즈카르야는 하느님이 보낸 천사의 말을 의심하고 벙어리가 됐지만 마리아는 의심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다시 말해 마리아의 믿음이 즈카르야보다 훨씬 더 깊다는 것을 암암리에 드러내고 있다. 하느님께 대한 마리아의 순종은 목숨을 걸고 받아들인 신앙이다. 마리아 당시 처녀가 애를 갖는 것은 돌에 맞아 죽을 일이었다. 지금과는 너무도 달랐다. 그러나 마리아는 이를 받아들였다. 동정 잉태라는 기적이 말하는 핵심은 하느님께는 불가능이 없다는 사실이다. 인간에게는 불가능한 일도 하느님께는 가능하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어떻게 처녀가 아이를 잉태할 수 있냐고 의문을 제기한다. 또 아무리 하느님이라고 해도 죽어서 흙먼지로 돌아간 이들을 어떻게 부활시킬 수 있냐고 묻는다. 동정 잉태나 부활 모두 신화라는 주장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현대인들은 하느님은 할 수 없어도 생명공학은 할 수 있다고 믿는다. 남성의 정자 없이 잉태시키는 처녀생식 기술이 그런 예에 속한다. 하느님이 어떻게 그 많은 사람들의 기도를 한꺼번에 다 들을 수 있겠냐고 반문한다. 첨단기술인 네비게이션 시스템은 인공위성을 통해 모든 차량에게 갈 길을 동시에 알려준다. 첨단과학은 할 수 있어도 하느님은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그러나 하느님은 첨단과학을 뛰어넘는 분이다. 결론적으로 동정 잉태가 말하고자 하는 초점은 인간에겐 불가능한 일도 하느님께는 가능하다는 것이다. 루카복음 1장 39-45절은 마리아가 엘리사벳을 방문하는 장면이다. 루카는 여기서 우리가 마리아를 공경해야 하는 이유를 알려준다. 엘리사벳은 마리아가 여인들 중에 가장 복되다고 했다. 마리아는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뤄지리라고 믿은 분이기 때문이다. 가브리엘 천사는 마리아에게 '은총이 가득한 이'(1,28)라고 했다. 가브리엘 천사와 엘리사벳이 한 말에 나타난 의미만으로도 마리아는 공경을 받는 데 부족함이 없다. 우리는 어려움이 닥치면 기도를 한다. 내 뜻을 이루고자 하는 기도가 많다. 그러나 기도는 내 뜻이 아닌 하느님 뜻대로 해달라는 것이어야 한다. 하느님 뜻이 더 나은 해답이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은 하느님께서 내 뜻을 이루도록 도와달라는 것을 기도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기도는 내 뜻을 관철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뜻대로 해달라는 것이어야 한다. 마리아가 그랬다. 돌에 맞아 죽어도 상관 없으니 하느님 뜻대로 하라고 했다. 그것이 신앙이다. 루카복음에 나타난 마리아는 하느님 나라가 이 땅에 오도록 하는 데 필요한 신앙의 자세를 가장 모범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루카복음 1장은 마리아에 관한 가장 중요한 자료이자 마리아를 공경해야 하는 이유를 알려주는 성서적 근거다. 정리=남정률 기자 njyul@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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