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규만 주교(서울대교구 서서울지역 교구장 대리)
우리는 루카복음에서 하느님 말씀에 마음 설레하며 온 힘을 다해 순명하는 성모님을 살펴봤다. 겸손한 자세로 어려운 이들을 배려하며, 모든 일에 지혜롭게 대처하시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이런 인격적 모습과 달리 성모님에 대해 허황된 이야기를 하는 이들도 있다. 어떤 학자나 외경은 원죄의 결과가 출산의 고통인데, 원죄 없으신 성모님은 그 고통을 겪지 않았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예수님 탄생을 전하는 부분에 직접 언급은 없지만 성모님 역시 모든 어머니가 겪는 출산의 고통을 겪은 것으로 보인다. 출산의 고통과 노동은 결코 원죄의 결과라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는 인간과 모든 동물이 번성하라는 하느님 축복으로 나타난다. 출산한 성모님이 나자렛으로 귀향하는 부분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아기 예수는 하느님 모습으로 오신 것이 아니라 우리와 똑같은 인간의 성장 과정을 거친다. 모든 아이가 엄마에게 많은 것을 배워가듯 아기 예수도 배움이 필요했다.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신들이 인간적 성장 과정 없이 쑥쑥 자라는 것과 달리 예수님의 성장 과정은 우리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예수님의 소년 시절(루카 2,41-54)을 보면 예수님이 부모를 따라 파스카 축제를 지내러 가는 모습이 나온다. 파스카는 '건너 뛰다'라는 히브리어에서 유래됐다. 원래 유목민의 축제인 파스카는 질병이 자신들이 키우는 가축을 건너 뛰게 함으로써 재산을 보호하려는 목적에서 시작된 의식이었다. 나중에 모세는 이집트에서 탈출할 때 파스카 예식을 이용한다. 이는 노예의 삶에서 자유인의 삶으로 건너 뛰려는 더 발전된 의미를 지니고 있다. 훗날 예수님이 최후의 만찬을 통해 거행하는 파스카 예식은 한층 더 큰 의미를 지닌다. 재산을 지키거나, 노예의 삶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는 현재의 문제가 아닌 유한의 삶에서 무한의 삶으로 건너 뛰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이런 파스카 축제에서 헤어진 아들을 애타게 찾던 부모에게 소년 예수가 한 말은 "왜 저를 찾으셨습니까?"였다. 그 이야기를 들은 성모님의 입장은 어땠을까? 여느 부모 같으면 화를 냈을 텐데, 성모님은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했다. 정말 화가 나도 곰곰이 되새기는 성모님. 소년 예수를 대하는 성모님의 인격적 모습을 생생히 볼 수 있다. '예수님은 지혜와 키가 자랐고…'라는 성경구절을 보면 예수님이 결코 겉만 인간의 모습을 한 하느님이 아닌 것을 알 수 있다. 루카복음에 나오는 예수님의 공생활에서의 모습은 마태오ㆍ마르코복음에 겹쳐 나오기도 한다. 어머니와 형제들이 스승님을 뵈러 왔다는 제자들 말에 각 복음은 어법의 차이를 보인다. 루카복음은 "내 어머니와 내 형제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이 사람들이다"라고 기록했고, 마태오ㆍ마르코복음에는 "누가 내 어머니고 누가 내 형제들이냐?"라는 표현이 더 나와 있다. 그리스 사람인 루카 성인은 철저한 남성 중심, 제자 중심에서 벗어난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기에 직접적 표현을 쓰지 않았다. 반면 마태오ㆍ마르코복음은 '누가 내 어머니냐'라는 반문을 뒤에 씀으로써 '하느님 말씀을 따르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세상에 어떤 남성과 여성이 아무리 하느님 말씀을 잘 듣고 따라도 예수님의 어머니, 아버지가 될 수는 없다. 예수님의 어머니, 아버지는 오직 성모님과 요셉 성인 뿐이다. '내 어머니'라는 말마디는 예수님께서 항상 자신의 어머니인 성모님을 지칭하는 말이라는 것이다. 다른 복음에는 나타나지 않고 루카복음(11,27-28)에만 나오는 기록을 살펴보자. 군중에게 연설하시는 예수님께 한 여인이 '선생님의 어머니는 행복하다'고 말한다. 이에 예수님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고 답하신다. 개신교는 여기 나오는 '오히려'를 예수님에게 젖을 먹인 여인은 행복하지 않다고 해석한다. 하지만 이는 예수님의 어머니로서, 하느님 말씀을 듣고 따르는 여인으로서 성모님이 갖는 이중적 행복의 의미라 볼 수 있다. 그와 마찬가지로 '누가 내 어머니고 형제냐?'라는 표현이 어머니 성모님을 무시했다고 볼 수는 없다. 성모님은 예수님에게 육체적 어머니인 동시에 하느님 말씀을 듣고 따르는 어머니라는 뜻이다. 정리=백영민 기자 heelen@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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