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리상식

[조규만 주교 성모님 이야기](6)- 신약성경에서 드러나는 성모님의 역할

뚜르(Tours) 2010. 8. 14. 18:08

"[조규만 주교 성모님 이야기](6)- 신약성경에서 드러나는 성모님의 역할"

조규만 주교(서울대교구 서서울지역 교구장 대리)


바오로 사도가 바오로 서간에서 성모님에 대해 언급한 부분은 찾기 쉽지 않다.
 "그러나 때가 차자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드님을 보내시어 여인에게서 태어나 율법 아래 놓이게 하셨습니다. 율법 아래 있는 이들을 속량하시어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 되는 자격을 얻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갈라 4,4-5).
 바오로 사도가 성모님에 대해 암시적으로 표현한 부분이다. 마리아라는 이름도 없고, '여인에게서 태어났다'는 이 한마디 말뿐이다. 예수님이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되심을, 여인으로부터 태어나셨다는 것으로 표현한 것이다. 여인에게서 태어난다고 하는 것은 한 인간의 어떤 나약성을 지닌 인성을 말한다. 하느님의 아들임에도 불구하고 여인에게서 태어나 우리와 똑같은 나약함을 지닌 존재가 되셨다는 점이다. 참된 인성을 지니게 됐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여인으로부터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많은 신학자들은 바오로 사도의 성모님에 관한 모든 신학적 진술의 출발점이 여기에 있다고 언급한다. 교부 바실리오는 하느님의 아들이 성모님을 통해 인간이 된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아들이 성모님으로부터 인성을 얻게 됐다는 '~를 통하여'(from)라는 전치사가 중요한 조건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직접적인 것은 아니지만 예수님 탄생과 관련해 필리피서 2장 6-11절을 들 수 있다.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하느님과 같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이렇게 여느 사람처럼 나타나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중략) 예수님의 이름 앞에 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에 있는 자들이 다 무릎을 꿇고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이시라고 모두 고백하며 하느님 아버지께 영광을 드리게 하셨습니다."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에서 '종의 모습'이라는 표현을 통해 마니피캇(성모님의 노래)에선 여종으로 표현한다.
 바오로 사도는 글에서 성모님을 언급하지 않는다. 그에게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하는데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많은 신학자들은 예수가 인간이 되는데 성모님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말한다.
 바오로 사도에게 마리아의 동정이나 교회가 발전시킨 마리아에 관한 언급은 찾아 볼 수 없지만, 적어도 예수님 강생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성모 마리아에 관한 신비가 출발점으로 제시되고 있다.
 네 복음서 중 가장 먼저 쓰인 마르코 복음 안에도 성모님과 관련된 이야기가 나온다.
 먼저, 성모님과 친척들이 군중과 이야기하는 예수님을 붙잡으러 가는 이야기다.
 "예수님께서 집으로 가셨다. 그러자 군중이 다시 모여들어 예수님의 일행은 음식을 들 수조차 없었다. 그런데 예수님의 친척들이 소문을 듣고 그분을 붙잡으러 나섰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미쳤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마르 3,20-21).
 여기는 성모 마리아라는 표현은 없지만 예수님의 친척이 언급된다.
 "그때에 예수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왔다. 그들은 밖에 서서 사람을 보내어 예수님을 불렀다. (중략)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누가 내 어머니이고 내 형제들이냐?'하고 반문하셨다. (중략) '이들이 내 어머니이고 내 형제들이다.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마르 3,31-35).
 이 대목에서 개신교 신학자들은 예수님도 당신 어머니와 형제들을 배척했는데 가톨릭에서는 왜 성모님을 공경하냐는 입장을 보인다. 그러나 이 대목이야말로 예수님이 당신 어머니가 자신을 낳은 어머니일 뿐 아니라, 어머니야말로 하느님 뜻을 행한 분으로서 "내 어머니다"고 하는 것을 반어법으로 말한다.
 이 세상 어떤 여성도 하느님 말씀 듣고 따라도 예수의 어머니가 될 수 있는 사람은 어머니인 마리아 외에는 없다. 예수님의 "누가 내 어머니이냐?"는 말은 당신 어머니를 겨냥해 드러내는 말씀이다. 철저히 성모 마리아를 위해서 사용된 언어다.
정리=이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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