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도 서울 주변의 산에는 지난 달 태풍 곤파스로 인해 쓰러진 나무들의 잔해가 곳곳에 널려 있습니다. 곤파스가 휩쓸고 간 다음 날 나는 집 근처인 지하철 3호선 불광역 북쪽으로 북한산에 올랐습니다. 등산로 초입부터 우람한 나무들이 쓰러져 길을 막고 있었습니다.
큰 키의 아카시아 나무들이 가장 피해가 컸고, 참나무와 소나무도 제법 섞여 있었습니다. 밑둥을 드러낸 나무들의 뿌리를 보니 표토층의 깊이가 20cm도 채 안 되어 보였습니다. 뿌리들이 깊이 들어가지 못했고 대부분 옆으로 퍼진 나무들이었습니다.
‘뿌리 깊은 나무, 바람에 흔들리지 않고, 꽃 좋고 열매 많다’던 용비어천가의 구절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원래 우리나라 산은 지질상 표토층이 얇아 뿌리가 깊이 박힐 수 없다고 합니다. 바위산인 북한산은 특히 그렇지요. 뿌리가 얕게 깔려 바람에 약할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 산에서 자라는 나무들의 운명인 듯합니다.
소나무만 하더라도 쪽 곧게 위로 뻗지 못하고 이리저리 비틀리면서 자라게 되죠. 관상용으로는 보기 좋지만 목재로 쓸모가 적은 나무들이 많은 겁니다.
그런데 야산 쪽과는 달리 안 쪽 계곡의 바위틈에서 자라는 키 큰 나무들이 하나도 쓰러지지 않은 채 온전한 모습인 것을 보게 됐습니다.
낮은 지대에는 얕게라도 표토층이 있지만 계곡에는 그마저도 없어 나무들은 막바로 바위틈에다 뿌리를 박고 삽니다. 바람에 쓰러지지 않은 비결이 바위에 있음을 알게 하는 겁니다. 나무들은 척박한 곳에서 자랄수록 뿌리를 깊게 박는다고 합니다. 깊이 들어가야 영양분을 빨아올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보니 땅 밑에서 큰 바위에 뿌리를 칭칭 감게 돼 바람에도 강해지는 것이지요.
프랑스의 로마네 꽁티 같은 명품 포도주가 자갈밭에서 재배되는 포도로 만들어진다는 것은 잘 알려진 얘기입니다. 자갈밭 깊은 곳에서 영양분을 섭취한 포도라 깊은 맛이 있다는 것이죠. 경남 고성군 이학렬 군수가 성공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천경적비(淺耕適肥) 농법도 같은 원리입니다. 논을 얕게 갈고 비료를 적게 주는 벼농사법입니다. 논을 깊이 갈고 비료를 듬뿍 주는 종전의 심경다비(深耕多肥) 농법과는 반대입니다.
심경다비의 경우 벼의 뿌리가 얕고, 웃자람으로 인해 병충해에 약해지며, 소출도 떨어지는 반면 천경적비 농법은 벼가 뿌리를 깊이 내려 튼튼하게 자라 농약이 필요치 않고, 양질의 쌀을 더 많이 수확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식물들도 땅이 비옥하면 얕은 곳의 영양만으로도 충분히 자랄 수 있어 뿌리를 깊이 박을 필요를 덜 느끼게 된다는 겁니다. 그러고 보니 곤파스의 피해가 골프장의 나무들에서 특히 막심했다는 얘기에 수긍이 갔습니다. 골프장의 수목들은 야산보다는 표토층이 깊은 곳에서 인공적으로 가꾸어지는 편입니다.
어릴 적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식물의 경우에도 이 얘기가 통하는 셈입니다. 척박한 환경을 이겨낸 나무가 크고 튼튼한 나무가 된다는 자연의 이치는 참으로 오묘합니다. 덩치는 커졌지만 체력이 갈수록 저하되고 있다는 우리나라 청소년들, 너무 비옥한 환경에서 과보호 상태로 자라기 때문은 아닐는지요.
임종건 / 연우포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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