東西古今

입 속의 사건들

뚜르(Tours) 2010. 12. 5. 11:08

  우연히 알게 된 치과 원장과 얘기가 통했고, 그의 환자가 되었습니다. 진단 결과 나의 어금니 두 개가 썩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보수 공사가 몇 달째 진행 중입니다.   
치료 첫 날 그 치과 원장은 간호사에게 이 닦는 법을 빡세게 가르치라고 지시하는 것이었습니다.

 

   간호사는 내 입을 벌리게 하고는 치열을 따라 루주 같은 빨간 물감을 칠했습 니다. 
간호사가 보여주는 거울 속의 내 이는 드라큘라처럼 변했습니다.

“이 칫솔로 물감을 닦아 지워보세요.”

평소 상하로 칫솔질하는 습관을 가진 나는 간호사의 지시에 자신 있게 칫솔질을 했습니다. 
그러나 웬걸, 물감이 군데군데 많이 남아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어금니 사이에 치석이 많이 생기는 건 잘 안 닦여지기 때문이에요.”

 

   그러나 이 정도로 이 닦기 공부가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 사이에 낀 음식물 찌 “이렇게 잇몸을 세게 누르면서 상하로 닦아야 합니다. 
그래야 잇몸도 튼튼해지고 이에 낀 음식물 찌꺼기도 제거됩니다. 
아셨죠?” 

   간호사가 칫솔을 쥐더니 시범을 보였습니다. 확실히 간호사가 닦아주니 앞니에 묻은 물감이 깨끗이 지워졌습니다. 
그러나 어금니 사이에는 아직도 물감이 군데군데 묻어 있었습니다.

 

   간호사는 조그맣게 생긴  ‘클리닝 팁’이란 걸 꺼내 들더니 내 어금니 사이 사이를 닦았습니다. 그제야 물감이 모두 지워졌습니다. 
“보통 칫솔로는 어금니 사이와 뒷면을 깨끗이 닦지 못하니 이런 어금니칫솔을 사용하세요. 
꺼기를 없애는 과정이 계속되었습니다. 
간호사는 ‘치간 칫솔’(가는 용수철 모양의 플라스틱 갈고리)을 내 어금니와 어금니 사이, 그리고 어금니와 송곳니 사이에 끼워 앞뒤로 미는 것이었습니다. 
피가 났지만 자주 하면 괜찮아진다고 간호사가 말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치실로 앞니 사이를 닦는 요령을 가르쳐주었습니다.

“힘드시죠? 
어려워도 음심을 먹고 난 후 이를 잘 닦으셔야 세균을 억제해서 충치를 예방합니다. 
앞으론 이렇게 닦으셔야 합니다.”

 

   그날 집에 돌아와 간호사가 말해준 대로 이를 닦으면서 이게 예삿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칫솔 하나만을 가지고 기껏해야 3분이면 해치웠던 이 닦기가 네 가지 기구를 이용한 ‘중대한’ 일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20분은 걸렸습 니다. 
이를 닦는 일이 정말 어렵고 중요한 일이라는 걸 되새기게 됐습니다. 앞으로 이 닦아 주는 직업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치료를 받으러 갈 때마다 그 간호사는 “이 닦고 오셨죠? 자, ‘아’해 보세요. 어금니 사이에 야채 찌꺼기가 끼어 있네요. 치간 칫솔을 사용 안 하셨죠? 치간 칫솔을 어금니 사이에 끼우고 앞뒤로 밀어주세요. 어금니 사이에 음식이 끼면 세균이 번식하고 그래서 이가 썩게 되는 거예요.”

 

   이렇게 치과 치료를 받으면서 내 입속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많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치과 의자에 누워 눈을 감고 치과 원장과 간호사의 세균 이야기를 들으니 마치 현미경을 들여다보는 듯한 상상력이 발동됐습니다. 
이가 썩는 것은 세균의 활동 때문이고, 치석은 이들 미생물이 죽어 시체가 딱딱하게 된 것이라 합니다.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없으니 망정이지, 현미경을 들이대고 입안을 보면 아마 꼼지락거리는 미생물로 가득 차 있을 것이니 기겁할 일입니다.

 

   언젠가 ‘미생물의 세계’라는 주제로 생물학자의 강연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 학자는 강의 자료 첫 머리에 강호동의 사진을 보여주면서 질문을 던졌습니다. 
“사람의 몸은 미생물의 서식처입니다. 
강호동의 몸무게가 100킬로그램이라면 그 중 미생물의 무게는 얼마나 될까요?” 
그리고 어리둥절해하는 청중에게 그 학자는 “10킬로그램”이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몸 무게의 10퍼센트를 이루는 미생물, 그게 몸 속 어디에 있든 우리 입이 그 경로이고 영양분 보급로일 것입니다.

 

   ‘가이아’ 가설을 주창한 제임스 러브록은 “지구를 지배하는 생물은 인간과 같은 고등 동물이 아니라 미생물이다.”라고 말합니다. 
공기 중에 산소가 거의 없었던 과거 지질 시대에는 산소를 싫어하는 혐기성 미생물이 창궐했습니다. 
그런데 대기 중에 산소가 생기면서 이 미생물들이 피난하는 사건이 벌어졌으니 그게 동물의 내장 속에 미생물이 살게 된 계기였다는 겁니다.

 

   치과 의자에 앉아서 사람이 사는 과정이 세균과의 싸움이라는 걸 새삼 느끼게 됐습니다. 어떻게 보면  결코 이길 수는 없되 절대로 지면 안 되는 싸움이기도 합니다. 
견제와 균형의 관계라고 해야 할까요. 나도 모르게 내 이가 썩어가는 것을 보며 내 몸을 지배하는 것이 미생물이라는 생각에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간호사가 가르쳐준 이 닦는 방법 중 유용한 것 한 가지를 빼 먹었네요. 입 냄새를 약화시키려면 혓바닥과 입천장을 잘 닦아야 하는 건 누구나 아는 상식입니다.

“칫솔을 목구멍을 향해 앞뒤로 움직이면 구역질이 납니다. 칫솔을 좌우로 밀면서 닦아보세요. 그러면 구역질이 훨씬 줄어듭니다.”

간호사가 시키는 대로 했더니 신기하게 구역질이 나지 않아서 편해졌습니다. 

 

   치과 치료를 받으며 ‘이제껏 살아오면서 무엇 하나 제대로 배운 게 있었나?’하고 반성해 봅니다. 

   

                        김수종의 <2분 산책>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