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벽(赤壁)의 결전을 앞두고 유비와 손권은 동맹을 맺었는데,
그 교섭사절로 제갈공명이 오나라로 들어왔다.
이 때 손권은 제갈근을 상대로 이런 대화를 나누었다.
"그대와 공명은 친형제간이 아닌가.
동생이 형을 따르는 게 당연하니 공명에게 우리 오나라에 그대로 주저앉도록 명하면 어떤가.
유비에게는 내가 편지를 써 보낼 테니."
"그건 무리입니다.
동생은 그 쪽에 몸을 바쳐 주종(主從)의 계약을 맺었기 때문에, 의리상 그것을 저버릴 수는 없는 것입니다.
제가 그 쪽으로 가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이 말을 듣고, 손권은 그 이상의 명답은 없다며 탄복했다고 한다.
제갈형제의 심경과 당시의 주종관계가 어떠했는가를 잘 알 수 있는 일화이다.
한데, 그런 제갈근에 대해서도 여러모로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 같다.
그 때문에 그는, 외교절충을 하는 자리에서 동생 제갈공명과 얼굴을 맞대는 일이 있어도, 공식석상 이외의 장소에서 형제가 만나는 일은 일절 하지 않았다.
촉나라의 유비가 맹우(盟友)인 관우(關羽)가 살해된 것에 격노하여 오나라를 공격하려고 결심했을 때, 제갈근은 유비에게 편지를 보내 그 계획을 철회 시키려 했다.
‘관우의 원수를 갚고 싶다는 마음은 알겠지만, 오나라와 촉나라가 싸우면 위나라만을 이롭게 할 따름이다’ 라는 취지이다.
이것이 소인배들의 터무니 없는 의심을 사게 되었다.
"제갈근은 오나라 신하이면서도 측근의 사람을 유비에게 보내 연락을 취하고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손권에게 모함하는 자가 있었다.
그러나 손권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나와 자유(周瑜)는 서로 굳은 약속을 하고 평생 어기지 않겠다는 맹세를 한 사이이다.
자유는 나를 배신하지 않는다.
내가 자유를 배신하지 않는 것처럼"
당시는, 손권에게 있어 최대의 위기였다고 해도 좋은 때였다.
촉나라와의 전쟁에 전력을 기울인다면, 위나라에 배후를 찔릴 우려가 있어, 실로 존망(存亡)의 위기에 처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국면에 처한 리더는, 아무튼 잡음에 정신이 혼미해지기 십상이지만, 역시 손권이라, 제갈근에 대한 신뢰감은 추호의 흔들림도 없었다.
‘의심이 들면 등용하지 말고, 등용하면 의심하지 말라’
는 말이 있다.
신뢰할 수 없는 사람이면 처음부터 등용하지 말며, 일단 믿고 등용한 사람이라면 끝까지 신뢰하라는 말이다.
손권은 이것을 실천할 수 있는 리더였다.
오나라에서 인재가 많이 배출되어, 각기 자기에게 부여된 역할을 충분히 다 할 수 있었던 것은, 손권의 이런 태도에 힘입은 바 크다.
리더와 부하 사이에 이 정도의 신뢰관계가 확립되어 있으면, 어떤 위기에 처하더라도, 조직이 흔들릴 일은 없을 것이다.
또한 부하로서도 거기에 부응하지 않겠는가.
<중국고사에서 배우는 제왕학>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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