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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0일, 오늘의 묵상(성 대 레오 교황 학자 기념일)

뚜르(Tours) 2011. 11. 10. 00:25

 

    오늘의 묵상(성 대 레오 교황 학자 기념일) 성 레오 교황은 390년 이탈리아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440년 무렵 교 황으로 선출된 성인은 행정 능력이 뛰어났을 뿐 아니라 영성적으로도 깊이 있는 설교로 유명하였다. 성인은 이단들과 싸우면서 이단 추종자들에게 참 다운 그리스도교 신앙을 지키게 하였다. 또한 동방 교회와 했던 교리 분쟁 에서 그리스도교의 본성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을 밝히고 로마를 야만족의 침략에서 보호하고자 노력하였다. 1754년 베데딕토 14세 교황이 교회 학자 로 선포하였다. 말씀의 초대 지혜는 하느님의 선하심의 모상으로서 세상을 통솔하고 이끈다. 지혜와 함 께 있는 사람은 다움 속에 빠지지 않고 사람들에게 빛이 되며 하느님의 선 하심을 드러낸다(제1독서). 하느님 나라는 특정 시간과 공간을 차지하는 나 라가 아니다. 하느님 나라는 영원한 현재에 있다. 바로 우리 가운데에 있다 (복음). 제1독서 지혜 안에 있는 정신은 명석하고 거룩하며 유일하고 다양하고 섬세하며 민 첩하고 명료하고 청절하며 분명하고 손상될 수 없으며 선을 사랑하고 예리 하며 자유롭고 자비롭고 인자하며 항구하고 확고하고 평온하며 전능하고 모든 것을 살핀다. 또 명석하고 깨끗하며 아주 섬세한 정신들을 모두 통찰 한다. 지혜는 어떠한 움직임보다 재빠르고 그 순수함으로 모든 것을 통달하고 통찰한다. 지혜는 하느님 권능의 숨결이고 전능하신 분의 영광의 순전한 발산이어 서 어떠한 오점도 그 안으로 기어들지 못한다. 지혜는 영원한 빛의 광채이 고 하느님께서 하시는 활동의 티 없는 거울이며 하느님 선하심의 모상이다. 지혜는 혼자이면서도 모든 것을 할 수 있고, 자신 안에 머무르면서 모든 것을 새롭게 하며, 대대로 거룩한 영혼들 안으로 들어가 그들을 하느님의 벗과 예언자로 만든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지혜와 함께 사는 사람만 사랑 하신다. 지혜는 해보다 아름답고 어떠한 별자리보다 빼어나며, 빛과 견주어 보아도 그보다 더 밝음을 알 수 있다. 밤은 빛을 밀어내지만 악은 지혜를 이 겨 내지 못한다. 지혜는 세상 끝까지 힘차게 퍼져 가며 만물을 훌륭히 통솔한다. (지혜 7,22-8,1) 복음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들에게서 하느님의 나라가 언제 오느냐는 질문을 받으시고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하느님의 나라는 눈에 보이는 모 습으로 오지 않는다. 또 '보라, 여기에 있다.', 또는 '저기에 있다.' 하고 사 람들이 말하지도 않을 것이다. 보라, 하느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너희가 사람의 아들의 날을 하루라 도 보려고 갈망할 때가 오겠지만 보지 못할 것이다. 사람들이 너희에게 '보라, 저기에 계시다.', 또는 '보라, 여기에 계시다.' 할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나서지도 말고 따라가지도 마라. 번개가 치면 하늘 이쪽 끝에서 하늘 저쪽 끝까지 비추는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자기의 날에 그러할 것이다. 그러나 그는 먼저 많은 고난을 겪고 이 세대에게 배척을 받아야 한다." (루카 17,20-25) 오늘의 묵상 "진정한 나는 누구인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존재란 말인가?" 이 두 가지 질문을 놓고 평생 죽음을 연구한 사람이 있습니다. 엘리자베스 퀴 블러 로스입니다. 그는 어릴 때 아버지의 친구가 나무에서 떨어져 죽는 것 을 목격하고서, 죽음을 알면 우리 자신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를 알 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의 죽음에 대한 연구 결론은 "살아라!"입니다. 이 말은 생물학적인 생 명을 유지하라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태어난 보람이 있게끔 살라는 것입니 다. 진정한 삶은 '자신의 존재를 통하여 손톱만큼이라도 더 나은 세상이 되 도록 노력하며 사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퀴블러 로스는 아름다운 삶을 살 려면, 그래서 아름다운 죽음을 맞이하려면 "세상을 위해 어떤 봉사를 해 왔 는가?"라고 스스로에게 물으면서 늘 '사랑'을 목표로 살아야 한다고 말합 니다. 결국 퀴블러 로스가 연구한 죽음은 삶에 대한 연구였고, 삶이 중요하 다는 것이 결론이었습니다. 영국의 호스피스 운동의 대가로 알려진 로저 콜 박사도 아름다운 죽음은 아름다운 삶을 체험할 때 가능하다고 했지요. 결국 하느님 나라는 우주 저 멀리 공간 너머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도 "하느 님 나라는 너희 가운데 있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삶의 한가운데 존 재의 의미가 충만한 곳, 그래서 충만한 기쁨과 평화가 깃들어 있는 상태가 바로 하느님 나라입니다. 우리가 아름다운 삶을 사는 것은 하루하루 자신의 '죽음'을 사는 것을 말합니다. 죽순처럼 올라오는 온갖 욕망과 자존심, 부풀 어 오른 '자아'가 죽을 때 하늘 나라가 우리 삶을 통해 드러납니다. 진정한 삶은 죽음과 분리된 것이 아니며 하나입니다. (매일미사에서 전쟤) --------- ------ ------------------------------------------------- 오늘의 기도 "주 하느님, 사도들을 반석 삼아 주님의 교회를 세우히고, 죽음의 힘도 감히 누르지 못하게 하셨으니, 복된 레오 교황의 전구를 들으시고, 교회를 주님의 진리로 견고하게 하시면 언제나 평화로이 지켜 주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천주로서 영원히 살아계시며 다스리시는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2011.11.10 Martin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