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가(유산계급)와 노동자(무산계급)로 양분되는 자본주의 체제가 노동자의 봉기로 사회주의화 한다는 막스의 논리는 구소련의 붕괴로 이미 빛이 바랬다. 하지만 자본주의가 경제체제로는 안정적이지만 질서면에서는 매우 불안정하기 때문에 자본주의의 하층구조인 노동자 계급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상층구조인 지식인들에 의해 사회주의적 사회질서가 등장하게 된다는 죠지프 슘페터의 논리는 의미심장하다.
자본주의의 경제적 성공이 자본주의의 정치적 실패를 가져온다는 그의 말은 더더욱 절묘하다. 지식인을 육성하고 그들에게 비판의 자유와 수단(각종매체)을 제공한 것이 다름아닌 바로 자본주의의 발전 때문인데 이들이 자본주의를 이념없이 비용-수익 계산만을 추구하는 단순경제활동으로 치부하고는 단기적이고 직접적인 이익만을 쫓는 대중의 욕구에 편승해 평등을 내세워 사회주의적 질서를 주장하게 된다는 뜻이다.
이런 주장에 제대로 맞설 용기를 갖지못한 보수주의자들은 이들의 제안에 동조하여 우파 포퓰리즘마저 등장할 것이라는게 슘페터의 예상이었다.
60여년전에 이미 세상을 하직한 한 경제학자의 예견은 바로 지금 우리를 두고 하는말 같다.
노동착취가 아닌 기업가정신과 혁신에 의해 산출된 부가 확대재생산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사회적 목적으로 쓰여지도록 강요 받으면 기업인은 저축과 투자 의욕을 상실하고 일자리는 더 줄어들며 실업으로 소득이 없는 빈곤층을 먹여살리느라 국가 재정은 파탄에 이른다. 오늘의 유럽이 이사실을 역사적으로 생생히 보여주고 있다.
개인의 이기주의적 영리심을 토대로 공동이익이 극대화 된다는 고전적 자본주의 논리에 집착하면 “월가의 탐욕”을 설명할 도리가 없으므로 인간의 이타적 본성을 자극하여 공동의 이익을 위한 노력을 보완해 나가는 것이 현명한 처사이지 사회주의로의 귀착은 현명치 못하다.
왜냐하면 역사적으로 사회주의적 실험은 반드시 경제 발전에 장애요인이었으며 이로 인해 인간의 일차적 삶의 질이 떨어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과거 세계의 양대 세력사이에서 보잘것 없는 조그만 분단국가가 세계의 중심으로까지 다가서게 된 까닭은 기업가 정신을 바탕으로 한 경제발전 이외에는 달리 설명할 것이 없다.
일제식민치하의 치욕과 이념대립의 민족전쟁비극, 그리고 이어진 찢어지는 가난을 뚫고 지금의 대한민국을 이룩한 한국인들은 그 어떤 달콤한 유혹에도 자본주의적 경제발전의 끈을 놓아서는 안된다. 대중의 분노에 기생하는 정치가는 슘페터의 예상대로 움직이겠지만 정치가를 선택하는 국민들은 슘페터의 예견을 뛰어넘는 지혜를 보여주어야 한국이 산다.
김광영 박사 / 맥스경영컨설팅(주)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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