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졸업장도 없고 영어도 못했어요. 새로운 인생에 뛰어들고 싶은 배짱과 용기가 있었죠."
황재길(69)씨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연 매출 1200만달러(약 127억원)를 올리는 영파이오니어 대표다.
사업가이지만 한국 교민들 고충을 살펴주고, 아프리카 기아대책 이사장으로도 뛰어다니는 그를 사람들은 ’대부(代父)’라 부른다.
원래는 동대문 시장의 원단 장수였다.
"고향인 (경북) 예천서 고등학교 졸업하고 주유소 직원으로 일하다 서울 동대문시장으로 올라와 원단 장사를 했죠.
수입이 괜찮았어요(웃음)."
하지만 50세를 목전에 둔 나이에 그는 새로운 도전을 했다.
1991년, 그때까지 번 돈 10억원을 들고 아무 연고도 없는 남아공으로 건너갔다.
"촌놈인 내가 어디까지 가볼 수 있는지 궁금해서였죠."
최근 잠시 귀국한 그는 "처음 만난 아프리카의 웅장한 경관, 미지(未知)의 세계가 가슴에 불을 질렀다"고 했다.
하지만 첫 3년 동안 세 가지 사업에 실패하면서 무일푼이 됐다.
다행히 휴대전화 사업이 가까스로 성공 궤도에 올랐다.
삼성 등 대기업의 리콜·초기 불량 제품을 고쳐서 되파는 사업이었다.
모잠비크 부탄가스 제조 사업까지 잇따라 성공하며 영파이오니어를 일궜다.
황 대표는 "시련이 곧 성공의 비결"이라고 했다.
"실패 덕분에 시장 파악을 했고, 현지 사정을 배우며 유망한 사업을 찾아낼 수 있었으니까요.
포기하지 않고 안목을 키우는 계기로 삼으면 기회는 반드시 옵니다."
최근에는 국제 구호단체 ’기아대책’과 함께 매일 아침 요하네스버그 리보니아 강변에서 외국인 불법 노동자를 대상으로 소시지와 빵을 나눠주는 ’밥 퍼’ 봉사 활동을 하고 있다.
"기아대책이 아프리카 아이들을 위해 건물을 세우고 학교를 만드는 모습에 감동받아서 나도 거들어야겠다 생각했지요."
지난해 5월부터는 아프리카 기아대책 이사장으로도 활동하면서 아프리카 사람들의 생활을 개선할 아이템을 찾고 있다.
"나만 잘 살기 위해 사업하는 건 한계가 있어요.
모두가 잘 돼야 행복하죠.
그게 동대문 옷 가게에서 원단 팔던 옷 장수 황재길과 남아공 영파이오니어 대표 황재길의 차이랍니다. 하하!"
< 2013.12.23 /조선일보에서>
'東西古今'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지금 우린 결혼하는 거야... (0) | 2014.01.02 |
---|---|
진정한 리더의 모습. 대기만성(大器晩成) (0) | 2013.12.31 |
물러날 때를 알면 위태롭지 않을지니… (0) | 2013.12.24 |
익명 사회 (0) | 2013.12.21 |
프로는 미래 중심적이고, 아마추어는 과거 중심적이다 (0) | 2013.12.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