東西古今

지금 우린 결혼하는 거야...

뚜르(Tours) 2014. 1. 2. 01:37

신부가 신랑의 휠체어 곁에 무릎을 꿇고 속삭였다.

"지금 우리 결혼하는 거야. 결혼하니까 좋아? 정신 차리고 있지?"

세 살배기 아들이 신랑 신부 가운데 서서 방긋거렸다.

신부가 가끔 신랑의 코 밑에 손가락을 뻗어 미미한 숨결을 확인했다.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샘물의 집'에서 말기암 환자 박기석(42·에어컨 수리공)씨가 부인 김옥(37)씨와 늦깎이 결혼식을 올렸다.

부부가 다니는 서울 송파구 우림교회 신도 40, 호스피스 말기암 환자·직원·자원봉사자 등 총 80명이 참석했다.

신랑 박씨는 이날 43번째 생일을 맞았다.

아들은 부모 곁에서, (1)은 하객 품에 안겨 생일날 결혼식 올리는 아빠를 지켜봤다.

 

샘물의 집은 말기암 환자 무료 요양시설이다.

이곳 원주희(51) 목사의 주례사는 간결했다.

"오늘 이 자리에 선 두 분은 그동안 가정형편이 어려워 결혼식을 못하고 살아오셨습니다.

남편이 몸이 많이 아프자 '아내에게 드레스를 입혀주지 못한 것이 미안하다'고 해서 이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두 사람은 2005년 서울 송파구의 30석짜리 냉면집에서 주방장과 종업원으로 처음 만났다.

신랑 박씨는 전북 군산, 신부 김씨는 임실이 고향이었다.

1년쯤 연애하다 2006년 함께 살기 시작했다.

그해 연말, 단칸 월세방에 함께 모시고 살던 신랑 박씨의 치매 아버지가 별세했다.

월세방 보증금을 빼서 장례비 400만원을 치르고 나니 갈 곳이 없었다.

부부 모두 연락 닿는 부모·형제가 없었다.

부부는 1박에 3만원짜리 허름한 여관방으로 옮겼다.

남편이 택시 회사에 취직해 하루 4~5만원을 벌어왔다.

 

20077, 첫 아들을 낳은 김씨가 이 여관방에서 남의 도움 없이 산후조리를 했다.

김씨는 "여관비·분유·기저귀 사고 나면 세 식구 먹고살기가 너무 힘들었다."고 했다.

일가는 여관을 탈출하지 못한 채 해를 넘겼다.

 

200810, 여관 주인이 "사흘 말미를 줄 테니 밀린 여관비 120만원을 물어내거나, 나가라"고 했다.

부부는 집 근처 공원에서 몹시 다퉜다.

"아들을 고아원에 맡기고 둘이 같이 죽자"는 말까지 나왔다.

그때 부인은 임신 8개월째였다.

 

도움의 손길은 뜻밖의 곳에서 왔다.

공원에 앉아 있던 주민 김말남(59)씨가 부부의 말다툼을 귀담아듣고 "당장 우리 집으로 가자"고 한 것이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김씨는 "어찌나 절박하게 다투는지, 나라도 돕지 않으면 정말 모진 짓을 저지를 것 같았다"고 했다.

그는 여관비를 대신 갚아주고, 보증금 100만원에 월세 15만원짜리 반지하 단칸방(16·5)도 구해줬다.

보증금도 빌려줬다.

 

부인 김씨는 그 방에서 딸을 낳고 젖을 물렸다.

"방을 얻고 나니 얼마나 마음이 편한지 '천국이 이런 곳이구나' 싶었어요."

남편 박씨는 택시 회사를 그만두고 부인과 함께 머리띠와 머리핀 만들기 같은 부업을 하며 몸조리를 도왔다.

그는 올봄에 에어컨 수리공으로 취직했다.

배냇짓 하는 딸을 보며 "애들 봐서라도 열심히 살자"고 부인에게 말했다.

 

지난 7, 그는 밥맛이 없고 온몸이 시름시름 아파 병원에 갔다가 간암 말기 진단을 받았다.

의사가 "수술하기엔 너무 늦었다"고 했다.

이후 넉 달간 남편 박씨는 통원 치료를 받았다.

남편이 다니던 회사 사장이 "화장실이 바깥에 있어 불편할 테니 좀 더 나은 방으로 옮기라"400만원을 빌려줬다.

일가는 근처에 있는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30만원짜리 사글셋방으로 옮겼다.

부부가 평생 살아본 제일 좋은 집이었다.

우림교회 신도들이 병원비 300만원을 모아줬다.

남편 박씨는 부인에게 "내가 아파 보니 이 세상에 봉사하는 사람들이 참 많다"고 했다.

 

지난 25, 부부는 샘물의 집에 들어왔다.

이틀 뒤, 박씨가 이곳을 운영하는 원 목사에게 "더 아프기 전에 아내에게 면사포를 씌워주는 게 마지막 소원"이라고 했다.

지난 28일 아침부터 결혼식 준비가 시작됐다.

샘물의 집 직원과 자원봉사자들이 총동원됐다.

원 목사와 친분이 있는 신현경(38·웨딩플래너)씨가 턱시도·웨딩드레스·신부 화장 등을 무료로 해결해줬다.

신씨는 "이 결혼식만은 꼭 돕고 싶었다"고 했다.

간호사들이 꽃을 사다 손수 부케를 만들고, 풍선을 불어 식장(샘물의 집 2층홀·132)을 꾸몄다.

우림교회 중창단, 자원봉사자 양시영(49·의사)씨의 아들인 인영(19·염광고 3), 자원봉사자 윤유숙(57)씨 등이 축가를 불렀다.

 

결혼식 전날 밤, 신랑 박씨가 한때 의식을 잃는 등 중태에 빠졌다.

신부 김씨가 "당신 힘드니까 결혼식 하지 말자"고 했다.

신랑이 신부 손을 꼭 잡으며 "내가 하고 싶다"고 했다.

축가가 끝난 뒤, 부부가 하객들의 박수를 받으며 식장을 걸어나왔다.

신랑 박씨는 "나는 아직도 이 세상에서 할 일이 많은데 너무 아쉽다"고 했다.

"이 사람(김씨)한테, 애들한테 해주고 싶은 일이 많아요. 그러나 이것도 하나님 뜻이라면."

 

신부 김씨는 "이 사람(박씨)을 처음 만났을 때, 눈이 너무 크고 예뻐서 한눈에 반했다"고 했다.

"다시 태어나도 이 사람과 만나고 싶어요. 내 남편인데."

 

결혼식 후 부부는 원래 살던 송파구의 단칸방으로 '첫날밤'을 보내러 갔다.

처음이자 마지막인 '신혼여행'이었다.

 

 

[조선일보. : 2009.12.01. 윤주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