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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30일, 오늘의 묵상(사순 제4주일)

뚜르(Tours) 2014. 3. 30. 08:26

 

    오늘의 전례(사순 제4주일) 오늘은 사순 제4주일입니다. 교회는 오늘 전례에서 부활의 기쁨을 미리 맛보는 기회를 갖습니다. 입당송에 나오는 '즐거워하여라, 예루살렘아.'라는 성경 말씀 에 그 정신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이 기쁨은 희생과 극기를 실천하며 주님의 수난의 길에 기꺼이 함께하려는 이들만이 느낄 수 있는 기쁨입니다.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하여 사순 시기에 요구되는 우리 신앙인의 자세를 더욱 새롭게 하도록 합시다. 말씀의 초대 주님께서 사무엘에게 이사이의 아들 가운데 하나에게 기름을 부으라고 명하 신다. 주님이 원하신 이는 다윗이었다. 사무엘이 다윗에게 기름을 붓자 주님의 영이 그에게 내려 줄곧 머물렀다(제1독서). 바오로 사도는 에페소의 신자들에 게 빛의 자녀답게 살아가라고 권고한다. 빛의 열매는 선과 의로움과 진실이다 (제2독서). 예수님께서는 길을 가시다가 만난 눈먼 사람을 치유해 주신다. 안 식일에 이 일이 이루어졌기에 바리사이들은 집요하게 그를 추궁하며 예수님을 죄인으로 여기라고 요구한다. 이를 거부하다가 쫓겨난 그를 다시 만난 예수님 께서는 당신이 사람의 아들이심을, 곧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생명을 나누어 받 을 수 있게 하려고 하늘에서 오신 분이심을 드러내신다(복음). 제1독서 그 무렵 주님께서 사무엘에게 말씀하셨다. "기름을 뿔에 채워 가지고 떠나라. 내가 너를 베들레헴 사람 이사이에게 보낸다. 내가 친히 그의 아들 가운데에서 임금이 될 사람을 하나 보아 두었다." 이사이와 그의 아들들이 왔을 때 사무엘은 엘리압을 보고, '주님의 기름부음 받은이가 바로 주님 앞에 서 있구나.' 하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사 무엘에게 말씀하셨다. "겉모습이나 키 큰 것만 보아서는 안 된다. 나는 이미 그 를 배척하였다. 나는 사람들처럼 보지 않는다. 사람들은 눈에 들어오는 대로 보 지만 주님은 마음을 본다." 이사이가 아들 일곱을 사무엘 앞으로 지나가세 하였으나, 사무엘은 이사이에 게 "이들 가운데에는 주님께서 뽑으신 이가 없소." 하였다. 사무엘은 이사이에 게 "아들들이 다 모인 겁니까?" 하고 묻자, 이사이는 "막내가 아직 남아 있지만, 지금 양을 치고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사무엘이 이사이에게 말하였다. "사람을 보내 데려오시오. 그가 여기 올 때까지 우리는 식탁에 앉을 수가 없소." 그래서 이사이는 사람을 보내어 그를 데려왔다. 그는 볼이 불그레하고 눈매가 아름다운 잘생긴 아이였다. 주님께서 "바로 이 아이다. 일어나 이 아이에게 기 름을 부어라."하고 말씀하셨다. 사무엘은 기름이 담긴 뿔을 들고 형들 한가운데에서 그에게 기름을 부었다. 그러자 주님의 영이 다윗에게 들이닥쳐 그날부터 줄곧 그에게 머물렀다.(사무 16,1ㄱㄹㅁㅂ,6-7,10-13ㄴ) 제2독서 형제 여러분, 여러분은 한때 어둠이었지만, 지금은 주님 안에 있는 빛입니다. 빛의 자녀답게 살아가십시오. 빛의 열매는 모든 선과 의로움과 진실입니다. 무 엇이 주님 마음에 드는 것인지 가려내십시오. 열매를 맺지 못하는 어둠의 일에 가담하지 말고 오히려 그것을 밖으로 드러내십시오. 사실 그들이 은밀히 저지 르는 일들은 말하기조차 부끄러운 것입니다. 밖으로 드러나는 것은 모두 빛으 로 밝혀집니다. 밝혀진 것은 모두 빛입니다. 그래서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잠자는 사람아, 깨어나라.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너를 비추어 주시리라."(에페 5,8-14) 복음 그때에 예수님께서 길을 가시다가 태어나면서부터 눈먼 사람을 보셨다. 제자 들이 예수님께 물었다. "스승님, 누가 죄를 지었기에 저이가 눈먼 사람으로 태 어났습니까? 저 사람입니까, 그의 부모입니까?"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저 사람이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그 부모가 죄를 지은 것도 아니다. 하느님의 일이 저 사람에게서 드러나려고 그리된 것이다. 나를 보내신 분의 일을 우리는 낮 동안에 해야 한다. 이제 밤이 올 터인데 그때 에는 아무도 일하지 못한다. 내가 이 세상에 있는 동안 나는 세상의 빛이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땅에 침을 뱉고 그것으로 진흙을 개 어 그 사람의 눈에 바르신 다음, "실로암 못으로 가서 씻어라." 하고 그에게 이 르셨다. '실로암'은 '파견된 이'라고 번역되는 말이다. 그가 가서 씻고 앞을 보 게 되어 돌아왔다. 이웃 사람들이, 그리고 그가 전에 거지였던 것을 보아 온 이들이 말하였다. "저 사람은 앉아서 구걸하던 이가 아닌가?" 어떤 이들은 "그 사람이오."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아니오. 그와 닮은 사람이오." 하였다. 그 사람은 "내가 바로 그 사람입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들이 "그러면 어떻게 눈을 뜨게 되었소?" 하고 묻자, 그 사람이 대답하였다. "예수님이라는 분이 진흙을 개어 내 눈에 바르신 다음, '실로암 못으로 가서 씻 어라.' 하고 나에게 이르셨습니다. 그래서 내가 가서 씻었더니 보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그 사람이 어디 있소?" 하고 물으니, 그가 "모르겠습니다." 하고 대답 하였다. 그들은 전에 눈이 멀었던 그 사람을 바리사이들에게 데리고 갔다. 그런데 예 수님께서 진흙을 개어 그 사람의 눈을 뜨게 해 주신 날은 안식일이었다. 그래서 바리사이들도 그에게 어떻게 보게 되었는지 다시 물었다. 그는 "그분이 제 눈에 진흙을 붙여 주신 다음, 제가 씻었더니 보게 되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바리사이들 가운데에서 몇몇은 "그는 안식일을 지키지 않으므로 하느님에게 서 온 사람이 아니오." 하고, 어떤 이들은 "죄인이 어떻게 그런 표징을 일으킬 수 있겠소?" 하여, 그들 사이에 논란이 일어났다. 그리하여 그들이 눈이 멀었던 이에게 다시 물었다. "그가 당신 눈을 뜨게 해 주었는데, 당신은 그를 어떻게 생각하오?" 그러자 그가 대답하였다. "그분은 예언자이십니다." 유다인들은 그가 눈이 멀었었는데 이제는 보게 되었다는 사실을 믿으려고 하 지 않았다. 그리하여 앞을 볼 수 있게 된 그 사람의 부모를 불러, 그들에게 물었 다. "이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눈이 멀었다는 당신네 아들이오? 그런데 지금은 어떻게 보게 되었소?" 그의 부모가 대답하였다. " 이 아이가 우리 아들이라는 것과 태어날 때부터 눈이 멀었다는 것은 우리가 압니다. 그러나 지금 어떻게 해 서 보게 되었는지는 모릅니다. 누가 그의 눈을 뜨게 해 주었는지도 우리는 모릅 니다. 그에게 물어보십시오. 나이를 먹었으니 제 일은 스스로 이야기할 것입니 다." 그의 부모는 유다인들이 두려워 이렇게 말하였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메시 아라고 고백하면 회당에서 내쫒기로 유다인들이 이미 합의하였기 때문이다. 그 래서 그의 부모가 "나이를 먹었으니 그에게 물어 보십시오." 하고 말한 것이다. 그리하여 바리사이들은 눈이 멀었던 그 사람을 다시 불러,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십시오. 우리는 그자가 죄인임을 알고 있소." 하고 말하였다. 그 사람이 대 답하였다. "그분이 죄인인지 아닌지 저는 모릅니다. 그러나 이 한 가지, 제가 눈 이 멀었는데 이제는 보게 되었다는 것은 압니다." "그가 당신에게 무엇을 하였 소? 그가 어떻게 해서 당신의 눈을 뜨게 하였소?" 하고 그들이 물으니, 그가 대 답하였다. "제가 이미 여러분에게 말씀드렸는데 여러분은 들으려고 하지 않으 셨습니다. 어째서 다시 들으려고 하십니까? 여러분도 그분의 제자가 되고 싶다 는 말씀입니까?" 그러자 그들은 그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말하였다. "당신은 그자의 제자지만 우리는 모세의 제자요. 우리는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는 것을 아오. 그러나 그자가 어디에서 왔는지는 우리가 알지 못하오." 그사람이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그분이 제 눈을 뜨게 해 주셨는데 여러분은 그분이 어디에서 오셨는지 모르신다니, 그것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하느님께 서는 죄인들의 말을 들어 주시 않으신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그러나 누가 하느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뜻을 실천하면, 그 사람의 말은 들어 주십니다. 태 어날 때부터 눈이 먼 사람의 눈을 누가 뜨게 해 주었다는 말을 일찍이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분이 하느님에게서 오지 않으셨으면 아무것도 하실 수 없었 을 것입니다." 그러자 그들은 "당신은 완전히 죄 중에 태어났으면서 우리를 가르치려고 드 는 것이오?" 하며, 그를 밖으로 내쫒아 버렸다. 그가 밖으로 내쫒겼다는 말을 들으신 예수님께서는 그를 만나시자, "너는 사람의 아들을 믿느냐?" 하고 물으 셨다. 그 사람이 "선생님, 그분이 누구이십니까? 제가 그분을 믿을 수 있도록 말씀해 주십시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너는 이미 그를 보았다. 너와 말하는 사람이 바로 그다." 그는 "주님, 저는 믿습니다." 하 며 예수님께 경배하였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나는 이 세상을 심판하러 왔다. 보지 못하는 이들은 보고, 보는 이들은 눈먼 자가 되게 하려는 것이다." 예수님과 함께 있 던 몇몇 바리사이가 이 말씀을 듣고 예수님께, "우리도 눈먼 자라는 말은 아니 겠지요?"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가 눈먼 사람 이었으면 오히려 죄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너희가 '우리는 잘 본다.' 하고 있으니, 너희 죄는 그대로 남아있다."(요한 9,1-41) 오늘의 묵상 사순 시기가 깊어 가는 사순 제4주일을 '장미 주일'로 부르기도 하였습니다. 요즈음은 보기 드물지만 이날 사제가 자색이 아닌 장미색 제의를 입고 전례를 거행한 데에서 유래된 말입니다. 희생과 단식, 보속 등을 엄격히 지키는 이 사 순 시기에 부활의 기쁨을 미리 맛보게 하며 위로하는 '장밋빛 주일'을 보내는 것은 낯설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의 진정한 기쁨이 무엇인지를 알고 느끼는 것의 중요성을 알기에 오늘의 이 거룩한 전례가 더욱더 감사할 따름입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덕을 지닌 사람의 특징을 올바르고 합당한 일에서 기쁨을 느낄 줄 아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사순 시기가 신앙 인으로서 필요한 덕을 키우고 수양하는 때라면 우리 그리스도인은 어디에서 어떤 방식으로 기쁨을 느끼는지 잘 살펴볼 일입니다. 기쁨이 그저 걱정거리가 없어진 상태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삶을 시작할 때 체험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사순 시기의 전례를 통하여 조금씩 깨달을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자신 의 삶에서 '변화의 표징'들이 구체적으로 드러날 때 느끼는 기쁨이야말로 사순 시기를 뜻있게 보내는 이들의 특권일 것입니다. 그런데 문득 발견하는 것은, 이러한 기쁨을 얻고자 노력하지만 이 기쁨은 자 기 자신이 완성하고 누리는 기쁨이 아니라, 주님의 성령으로 완성되도록 '내어 놓는' 기쁨이라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자신을 미완성의 존재로 인정하는 것이 신앙의 참기쁨을 느낄 수 있는 중요한 전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리처드 세넷이라는 사회학자는 『장인』이라는 책에서, 훌륭한 장인은 역설 적으로 '완벽 주의'를 피할 줄 알아야 한다고 지적하며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완벽 주의와 씨름하다 보면 나 자신을 의심하는 일을 해 보이려는 꼴이 되고 만다. 이 지경에 이르면 제작자의 정신 상태는 지금 만드는 물건이 해야 할 일 보다도 제작자 본인의 역량을 보여 주겠다는 쪽으로 더 쏠리게 된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빛 속의 삶으로 초대하십니다. 그러한 삶에는 장애와 오류와 박해가 생기지만 마침내 빛을 따르고 빛에 개방된 삶입니다. 그 빛이 온전히 자신을 비추고 채운다는 사실이야말로 우리가 느껴야 하고 또한 느낄 수 있는 기쁨의 본질일 것입니다.(매일미사에서 옮김) ---------------------------------------------------------------- 오늘의 기도 "빛의 아버지이신 하느님, 저희 마음속 깊은 데를 보시니, 어둠의 세력이 저희를 지배하지 못하게 하시고, 성령의 은총으로 저희 눈을 열어 주시어, 세상의 빛이신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 뵙고, 그분만을 믿게 하소서. 성자께서는 성부와 성령과 함께 천주로서 영원히 살아계시며 다스리시 나이다. 아멘!" 2014. 3. 30. Martinus

     

    ♬주여 자비를 베푸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