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문득 떠나고 싶을 때
이기헌
도시 생활에 찌들어 살다가
서쪽 하늘에 물든 노을을 보고
떠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하루의 일과를 마무리하면
또 고요한 밤이 먼 데서 오고
마음속에 들어온 노을은 침묵한다
오늘이 고달프다고 말하지는 말지니
당신이 문득 떠나고 싶을 때
떠날 수 없다고 아쉬워하지 마라
누구나 벅찬 가슴을 안고
하늘의 노을을 바라보지만
한순간 불타오르다 수그러든다
왕궁은 무지개 아래에 있고
사람들 또한 그 아래 집을 짓는다
저녁노을이 짙게 물들어가도
눈물을 아는 자만이 먼 길을
떠나갈 자격을 부여받았을 뿐이다
ㅡ시집『당신이 문득 떠나고 싶을 때』(문학의 전당, 2018)
출처 : 블로그 '하루 시 한 편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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