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 조동례
무에 그리 궁금한 게 많은지 할머니
부처님과 마주앉아 몇 시간째 좌담 중이다
눈을 감고도 부처님이 보이는지
이따금 머리를 조아리며
굽은 허리 더 굽혀 합장한다
경내를 다시 돌아보고
한 마디 얻어들을까 귀를 모아도
도무지 막막하여 돌아서는 순간
와르르 적막을 깨는 소리 따라가 보니
손 안에 굴리고 굴리던 염주줄 끊어졌는지
매여 있던 염주알 낱낱이 흩어졌다
매인 것은 살살 다루어야 풀리는 법인데
내 탓이다 내 탓이다 할머니
굴러간 염주알 찾느라 야단법석이고
마음 둘 곳 없어 절집 겉돌던
나는 내 이마를 쳤다
백팔번뇌가 줄 하나 끊고 맺음에
달려 있었다니!
- 조동례,『어처구니 사랑』(도서출판 애지,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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