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일 년 살릴 년 /박상률
이 년 가니 저 년 오는 세밑 저녁
앉은뱅이책상 앞에 쭈그려 앉아
헌 수첩 전화번호 새 수첩에 옮겨 적는다
해마다 갖는 나만의 송구영신 의식으로
전호번호부 개정판을 내는 것이다
이 사람은 금년에 연락한 일 한 번도 없었지
내년에도 전화할 일 없을 테니 헌 수첩에서 죽이고
이 사람은 자주 연락해서 전화번호 외울 판이지만
내년에도 또 전화할 일 있을지 모르니 새 수첩에 살리고
묵은해니 새해니 따질 것도 없는 살림이지만
구년 가고 신년 오는 그 사이
죽일 년 살릴 년 운명을 가르는 나의 연례행사
올해의 마지막 날이 일요일이네요.
오늘 미사 전례는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입니다.
성탄 팔일 축제의 끝날 주일에 나자렛 성가정을 기억하는 미사입니다.
기억에 남는 성서 구절이 있어 적어 봅니다.
" 얘야, 네 아버지가 나이 들었을 때 잘 보살피고
그가 살아 있는 동안 슬프게 하지 마라.
그가 지각을 잃더라도 인내심을 가지고
그를 업신여기지 않도록 네 힘을 다하여라.
아버지에 대한 효행은 잊히지 않으니
네 죄를 상쇄할 여지를 마련해 주리라(집회 3,12-14)."
" 아내 여러분, 남편에게 순종하십시오.
주님 안에 사는 사람은 마땅히 그래야 합니다.
남편 여러분, 아내를 사랑하십시오. 그리고 아내를 모질게 대하지 마십시오.
자녀 여러분, 무슨 일에서나 부모에게 순종하십시오.
이것이 주님 마음에 드는 일입니다.
아버지 여러분, 자녀들을 들볶지 마십시오. 그러다가 그들의 기를 꺾고 맙니다(콜로 3,18-21).
새해에는 온 가정에 만복이 깃드시길 빕니다.
2023. 12. 31 오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