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한 편의 詩

술 마시기 좋은 밤 /신경림

뚜르(Tours) 2024. 1. 23. 18:10

 

 

술 마시기 좋은 밤  /신경림

 

 

햇빛에 내어 말린 고급 속내의 만큼

사랑도 우정도 바래더라

변하지 않는 건 무엇인가

속이 텅 비면 견디지 못해 마시는

술과 음악은 세월을 썩게 하는 정겨운 습기라

겨울비 내리는 밤 빌리 홀리데이와

바흐보다 절실한 '혼자 만의 사랑 ' 열한 번

'백학' 일곱 번 번갈아 들으며

마음의 지붕이 쓸쓸함을 위하여

식구와 뭇사람의 건강을 위하여

홀로 건배하는데 창밖 깊은 연못에서

거북이가 솟아올라

맥주 한 상자 밀고 방으로 기어오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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