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한 편의 詩

집으로 가는 길 / 백무산

뚜르(Tours) 2024. 3. 29. 15:39

 

 

집으로 가는 길   / 백무산



한적한 노인요양병원 앞 들길에는
언제나 집으로 가는 사람들이 걸어가고 있습니다
발을 끌고 손목을 떨고 목발을 짚고 산책 운동을 나온 그들은
여기서 마감하리란 생각은 아무도 하지 않습니다
휠체어를 끌고 안간힘으로 부지깽이처럼 마른 몸으로
지팡이를 짚고 힘껏 한걸음 한걸음 그들의 소원은
집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들 소원대로 내일이면 몇은 보이지 않습니다
간절히 가고 싶었던 그 집에는 어머니가 있습니다
어머니는 사라진 적이 없습니다
언제까지나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집으로 가서 어머니 품에 잠들고 싶습니다

어머니 모습으로 나타내신 건 어둠입니다
따듯한 가슴과 밝은 빛을 낳으신 건 어둠입니다
어머니의 보살핌이란 다시 낳아주는 일입니다
어머니가 우리를 매일매일 낳아주었다는 걸 기억하고 있습니다
먹이고 용서하고 씻기고 가르치는 일은
다시 낳아주는 일이었다는 걸 기억하고 있습니다

집으로 가면 어머니가 다시 낳아주실 것입니다
용서하듯이 다시 낳아주실 것입니다
집이 비었으면 고요히 불평 없이 나를 비우고
나를 지우고 기다려야 합니다
어둠을 잃지 말아요
저녁이면 어머니가 돌아오십니다

어둠을 잃어버리면 허무와 두려움이 우리를 먹어버릴 것입니다

- 백무산,​『그 모든 가장자리』(창비,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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