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한 편의 詩

곁, 맨발로 걷기 ​/안차애

뚜르(Tours) 2024. 11. 4. 09:14

 

 

곁, 맨발로 걷기  ​/안차애

 

뭘 하며 지내냐는 안부전화에, 친구는

어싱earthing을 하며 지낸다고 한다

어 씽?

노래교실 같은 거냐는 내 물음에

그녀는 깔깔 웃으며 맨발로 흙길을 걸어 다니는 거란다

소화에도 좋고 피로회복에도 좋대

너처럼 음주飮酒형 인간에겐 더욱 좋을 거야

하긴,

지구는 46억 년 전부터 맨발로 걷는 중이었지

멈추면 끝장나거나 끝장날 때에야 멈추는

현재진행형 존재

지구는 쉬지 않고 걸었지

쉬지 않고 돌았지

쉴 새 없이 낳고 철썩철썩 엉덩짝께나 두들기며 키웠지

걸으면서 울고 콜록거리고 뿌옇게 마스크를 쓴 채 앓았지

길을 걸었지 누군가 곁에 있다고 느꼈을 때, 라는 옛 가수의 노랫말도 있지만

누군가 곁에 없어도, 걷다보면

곁이 열리고 곁이 스며들고 곁이 웃고, 끝없이 맨발로 걷기

콩벌레처럼 같이 굴러온 거야

곁을 진행형명사라 말해도 될까

지문에 지문을 포개고

물기에 습도를 맞추고

서로의 알갱이와 알갱이를 페로몬처럼 교환했지

모르는 곁과 얼굴 없는 곁이 길이 될 때까지

걷는 자를 곁인 자라고 해도 될까

곁의 리듬, 곁의 체온, 곁의 호흡에 올라타는 자를

오늘의 음유시인이라고 불러도 될까

쉼 없는 맨발의 진행형으로

내가 곁일 때 너의 길 위에서,

ㅡ계간 《시와 경계》(2024, 봄호)

'이 한 편의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늘같이 좋은 날 /김용호  (0) 2024.11.02
11월의 기도 / 양광모  (0) 2024.11.01
시월이 떠나는 날 /高松 황영칠  (0) 2024.10.31
우체국을 지나며 / 문무학  (0) 2024.10.28
모르는 당신 /이화영​  (0) 2024.10.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