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효숙 카드'로 헌법질서 흔들지 말라
지난 8월16일 전효숙 헌법재판소 재판관이 제4기 헌재를 이끌 소장에 내정된 지 석 달이 지났다. 윤영철 전 헌재 소장의 임기가 9월14일 끝남으로써 헌재 소장 자리도 두 달이나 공백 상태다. 헌법의 꽃인 헌재가 시들고 있는 것이다. 현행 헌법질서의 기능 부전으로 이어지는 이 비(非)헌법적 상황은 위헌적 신문법 및 반(反)헌법적 사학법과 더불어 대한민국의 어린 법치주의를 추위에 떨게 하고 있다.
지난 여름 전효숙 내정자의 임기와 관련해 당시 청와대 대변인은 “전 내정자는 조만간 헌재 재판관직을 사퇴한 뒤 국회 인준을 통과하면 6년 임기를 새롭게 보장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 말 속에 이미, 청와대가 대법원장 지명으로 재판관이 된 전 내정자를 사퇴시킨 후 대통령 임명 형식을 빌려 새롭게 6년 임기를 보장하려는 작금의 반헌법 사태를 명료하게 예견케 했다.
지금 한국 사회의 헌법 공백은 이미 그때 확정된 것이다. 그 공백을 메워 새로운 시작을 할 것인지 여부가 오늘 내일 다시 결정된다. 그 진원지는 이번에도 역시 노무현 대통령과 청와대가 될 것이다. 열린우리당과 그에 동조하는 정당 그리고 국회의장 등은 조연에 머무를 것이다.
만일 9월의 어느 날이었다면, 제1야당인 한나라당이 국회법 및 헌재법에 규정된 헌재 재판관 및 재판 소장 임명을 위한 절차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것을 받아들이고, “헌법재판관 인사청문회를 거친 뒤 헌재소장 인사청문회를 다시 하여” 그 임명 동의를 위한 국회 본회의 표결로 가는 헌법 치유는 가능했을 것이다.
재판관직 사퇴가 대통령의 입김에 의한 것인지, 헌재나 대법원의 협의를 거쳐 본인이 판단한 것인지 등을 토의해 책임의 소재를 가린 뒤 그것이 헌재의 정치적 중립성을 해하는 것인지를 따지고, 전 후보자의 지금까지의 판결, 결정 그리고 그 전인격적인 삶의 궤적을 ‘청문’해 표결로 처리했으면 헌재의 위상은 지켜지며 현행 헌법의 생명력은 보전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어렵다. 헌법 역시 시간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의 헌법은 반헌법적인 것을 헌법인 것으로 만들기도 하지만 역으로 헌법에 정해진 대로 하는 것이 반헌법으로 되게도 한다. 헌법의 개방성·유동성으로부터 나오는 어찌할 수 없는 성격이다. 의회주의의 양대 지주가 되는 다수결주의와 공개성 원칙 역시 이런 시간 속의 헌법에서 그 실체를 드러내는 전형적인 헌법적 현상들이다.
이미 ‘전효숙 헌법재판소장 임명동의안’은 폐기되는 형식으로 세 번씩이나 본회의를 통과하지 못했다. 규범적으로 볼 때 더 이상 국회가 동의하기 어려운 지경이 된 것이다. 현실적으로도 열린우리당 139석만으로는 의결정족수 149석에 미달하며 이는 민주노동당 9석을 포함해도 어렵다. 거기에 민주당 12석까지 끌어들이고 또한 임채정 국회의장으로 하여금 헌재 소장 임명동의안을 본회의에 직권 상정하도록 할 정도라면, 이는 다수결주의의 본지를 한참 벗어나 있는 것이 된다. 다수결주의는 국민의 대표성을 투영할 때 정당성을 가진다는 헌법에 반하는 것이다.
헌법질서가 다수결주의를 공동체 의사결정의 헌법 원리로 삼는 근거는, 다수의 의사는 민주주의적 정당성을 지닌 객관화된 의사지 주관화된 힘이 아니라는 믿음, 즉 투표로써 확인되는 국민의 다수가 의회의 다수라는 일응의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감정’ 다수, ‘권위’ 다수, ‘절차 하자’ 다수는 국민의 뜻이 아니라 코드의 힘으로 밀어붙이는 반헌법적 명분에 불과하다. 국민의 이름으로 나라의 정체성을 지키는 것이 ‘헌법’이며, 코드나 시대정신이라는 등의 추상적 명분으로 나라를 허물려는 행태들은 ‘반헌법’이니 더 이상 헌법질서를 흔들지 말라.
강경근 (숭실대 교수·헌법학 / 바른사회 운영위원)
출처 - 문화일보 2006. 11. 14 포럼
지난 8월16일 전효숙 헌법재판소 재판관이 제4기 헌재를 이끌 소장에 내정된 지 석 달이 지났다. 윤영철 전 헌재 소장의 임기가 9월14일 끝남으로써 헌재 소장 자리도 두 달이나 공백 상태다. 헌법의 꽃인 헌재가 시들고 있는 것이다. 현행 헌법질서의 기능 부전으로 이어지는 이 비(非)헌법적 상황은 위헌적 신문법 및 반(反)헌법적 사학법과 더불어 대한민국의 어린 법치주의를 추위에 떨게 하고 있다.
지난 여름 전효숙 내정자의 임기와 관련해 당시 청와대 대변인은 “전 내정자는 조만간 헌재 재판관직을 사퇴한 뒤 국회 인준을 통과하면 6년 임기를 새롭게 보장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 말 속에 이미, 청와대가 대법원장 지명으로 재판관이 된 전 내정자를 사퇴시킨 후 대통령 임명 형식을 빌려 새롭게 6년 임기를 보장하려는 작금의 반헌법 사태를 명료하게 예견케 했다.
지금 한국 사회의 헌법 공백은 이미 그때 확정된 것이다. 그 공백을 메워 새로운 시작을 할 것인지 여부가 오늘 내일 다시 결정된다. 그 진원지는 이번에도 역시 노무현 대통령과 청와대가 될 것이다. 열린우리당과 그에 동조하는 정당 그리고 국회의장 등은 조연에 머무를 것이다.
만일 9월의 어느 날이었다면, 제1야당인 한나라당이 국회법 및 헌재법에 규정된 헌재 재판관 및 재판 소장 임명을 위한 절차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것을 받아들이고, “헌법재판관 인사청문회를 거친 뒤 헌재소장 인사청문회를 다시 하여” 그 임명 동의를 위한 국회 본회의 표결로 가는 헌법 치유는 가능했을 것이다.
재판관직 사퇴가 대통령의 입김에 의한 것인지, 헌재나 대법원의 협의를 거쳐 본인이 판단한 것인지 등을 토의해 책임의 소재를 가린 뒤 그것이 헌재의 정치적 중립성을 해하는 것인지를 따지고, 전 후보자의 지금까지의 판결, 결정 그리고 그 전인격적인 삶의 궤적을 ‘청문’해 표결로 처리했으면 헌재의 위상은 지켜지며 현행 헌법의 생명력은 보전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어렵다. 헌법 역시 시간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의 헌법은 반헌법적인 것을 헌법인 것으로 만들기도 하지만 역으로 헌법에 정해진 대로 하는 것이 반헌법으로 되게도 한다. 헌법의 개방성·유동성으로부터 나오는 어찌할 수 없는 성격이다. 의회주의의 양대 지주가 되는 다수결주의와 공개성 원칙 역시 이런 시간 속의 헌법에서 그 실체를 드러내는 전형적인 헌법적 현상들이다.
이미 ‘전효숙 헌법재판소장 임명동의안’은 폐기되는 형식으로 세 번씩이나 본회의를 통과하지 못했다. 규범적으로 볼 때 더 이상 국회가 동의하기 어려운 지경이 된 것이다. 현실적으로도 열린우리당 139석만으로는 의결정족수 149석에 미달하며 이는 민주노동당 9석을 포함해도 어렵다. 거기에 민주당 12석까지 끌어들이고 또한 임채정 국회의장으로 하여금 헌재 소장 임명동의안을 본회의에 직권 상정하도록 할 정도라면, 이는 다수결주의의 본지를 한참 벗어나 있는 것이 된다. 다수결주의는 국민의 대표성을 투영할 때 정당성을 가진다는 헌법에 반하는 것이다.
헌법질서가 다수결주의를 공동체 의사결정의 헌법 원리로 삼는 근거는, 다수의 의사는 민주주의적 정당성을 지닌 객관화된 의사지 주관화된 힘이 아니라는 믿음, 즉 투표로써 확인되는 국민의 다수가 의회의 다수라는 일응의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감정’ 다수, ‘권위’ 다수, ‘절차 하자’ 다수는 국민의 뜻이 아니라 코드의 힘으로 밀어붙이는 반헌법적 명분에 불과하다. 국민의 이름으로 나라의 정체성을 지키는 것이 ‘헌법’이며, 코드나 시대정신이라는 등의 추상적 명분으로 나라를 허물려는 행태들은 ‘반헌법’이니 더 이상 헌법질서를 흔들지 말라.
강경근 (숭실대 교수·헌법학 / 바른사회 운영위원)
출처 - 문화일보 2006. 11. 14 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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