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야, 문제는 바로 정치야. 정신 차려.
정치가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공자(孔子)는
묻는 사람에 따라 각각 다르게 대답했다.
계강자(季康子)가 물었을 때는
‘정자정야(政者正也)’라고 했고,
섭공(葉公)이 물었을 때는
‘가까운 자가 기뻐하고 먼데 있는 자가
찾아오는 것(近者說 遠者來)’이라 했다.
자로(子路)에게는 ‘진실로 제 몸을 바르게 하면
정사를 베푸는 것이 무엇이 어려우며,
제 몸을 바르게 못하면 백성을 어찌 바르게 할 수
있으리오’ 했다.
논어(論語)에는 호랑이한테 받은 변보다
폭정이 더 무서워 나라를 버리는 백성의 얘기도 나온다.
그 모두가 구구절절이 옳은 말이요, 오늘날에도 여전히
그 경책이 새롭다.
공자가 이렇듯 정치를 다양하게 정의하거나 설파한 것은
공자 특유의 맞춤답변일 수도 있지만, 그 보다는 공자가
살았던 춘추전국시대의 특정한 나라, 특수한 상황을 각각
염두에 둔 대답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시대와 상황에 따라 정치의 요체는 달라질 수밖에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경우 시대와 상황에 따른 정치의 요체는
무엇이고, 정치는 그에 따라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가.
나의 짧은 소견으로는, 우선 30여년에 걸친 군사독재
시대에 있어서 정치의 요체는 정의를 실현하는 것일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된다.
권위주의적 군사정치 문화를 청산하고, 자유와 인권과
민주주의라는 정의를 회복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불의에 짓밟히면서도 호소할 데 없는 사람들,
가난이 제 탓만이 아닌 사람들,
저 짐에 눌려 신음하는 사람들,
감옥에 갇힌 자와 소외되고 뿌리 뽑힌 이웃 형제들의
눈에서 눈물을 닦아주고,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품위를 가지고 인간답게,
각기 자기운명의 주인공으로 살게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정작 그것을 주도적으로 추동해 낸 것은
정치인이 아니라, 학생과 지식인, 노동자와 농민이
중심이 된 재야요 이 땅의 민중들이었다.
이들의 피와 땀과 눈물로 민주화가 다가왔을 때,
그들은 차려놓은 밥상에 숟갈 들고 대들기 바빴다.
그리고 서로 내가 정권을 잡아야 한다고 싸웠다.
우여와 곡절 끝에 민주화의 시대가 왔을 때, 정치가
감당해야 할 일은, 민주화와 더불어 봇물처럼 분출되기 시작한,
다양한 계층의 서로 상충하는 목소리를
정의와 공동선(共同善)의 이름으로 조정해 내는 것이었다.
노동자와 농민, 그리고 교사들의 요구가 공동선에 반(反)하거나
지나칠 때 그것은 안된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어야 했다.
이쪽 저쪽에서 날아오는 돌을 맞으면서도,
그 돌에 맞아 피를 철철 흘리면서도,
우리 공동체가 함께 가야하는 길은 결코 그 길이 아니라고
외치고 설득할 수 있어야 했다.
그러나 이 나라 정치는 공동선의 방향으로 조정해 내기는커녕,
오히려 이 나라 국민을 지역, 이념, 계층, 세대,
그것도 모자라 코드와
네편 내편으로 서로 갈라지고 갈등하게 만들었다.
새천년, 21세기, 새로운 문명적 전환이라는 변화 속에서
한국의 정치는 우리 사회의 잠재적 역량을 최대한으로
조직해내고 키워서, 통합된 힘으로 세계로, 미래로, 나아갈 수
있도록 그 역할을 해야 했다.
밖으로는 홍익인간의 정신으로 세계의 평화와 인류의 진보에
기여 헌신하는 ‘위대한 한민족시대’를 열어나가고,
안으로는 이 나라 이 공동체의 일원이 된 것을 보람과 긍지로
느낄 수 있게 해야 했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우리 공동체의 잠재적 역량은
최대한으로 흩어지고, 가까운 사람들은 떠나고(近者去),
떠난 사람들은 결코 돌아오고 싶어 하지 않는다(遠者不來).
일본은 잃어버린 10년을 되찾아 저만치 앞서가고,
중국은 천지개벽과도 같은 빠른 속도로 추월해 오고 있는데,
우리는 가운데 끼어서 방황과 정체를 거듭하고 있다.
이 나라 정치는 한 번도 그 시대적 소임을 다 한 적이 없다.
걸림돌이 되고 있거나 산통만 깨고 있는 것이다.
이 나라 정치는 아직도
‘우리는 어디에 서 있으며,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르는 채 진지한 고뇌조차도 하지 않고 있다.
이 나라 정치가 노무현 정권을 넘어서까지 이대로 계속 간다면,
마침내는 이 나라, 이 공동체를 망치고 말 것이다.
바보야, 문제는 바로 정치야. 정신 차려.
김정남 /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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