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골과 처칠, 노무현
국가 지도자의 말은 국민을 살리고 죽인다.
1979년 유신정권 말기 김영삼(YS) 야당 총재는 의원직에서 제명됐다.
그는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민주주의의 새벽은 온다"고 외쳤다.
외환위기 실정(失政)과 아들의 권력 방종으로 대통령 YS는 무너졌지만 ’야당 투사 YS’는 이 말 한마디로 국민의 가슴에 살아 있다.
독재자 박정희는 "일하면서 싸우고 싸우면서 일하자"고 외쳤다.
지금 풍요의 방종에 빠져버린 세대는 모르겠지만 70년대 절체절명의 세월을 살았던 이들은 이 말을 기억한다.
YS의 ’모가지론’만큼 박정희의 ’총과 망치론’은 시대의 운명이었다.
지도자의 어록 중에서 국민은 무엇을 기억하는가.
새 시대를 열겠다던 노무현 대통령은 몇 개월이 지나지 않아
"대통령직 못 해먹겠다"며 꼬리를 내렸다.
그리고 4년이 흘렀는데도
"난데없이 굴러들어온 놈, 흔들어보자 이거 아닙니까"라고 말했다.
대통령의 언사(言辭) 가운데 국민이 기억해야 할 것은 이것밖에 없는가.
모름지기 국가 지도자의 말이란 어떠해야 하는가.
86년 1월 28일 TV를 보던 미국인은 충격에 빠졌다.
우주왕복선 챌린저호가 공중에서 폭발해 버린 것이다.
그날 저녁 레이건 대통령은 백악관 집무실에서 TV 카메라 앞에 앉았다.
한국 대통령이라면 애도와 함께
’철저한 진상조사,엄중한 문책, 재발방지’부터 말했을 것이다.
그러나 레이건은 사망한 7명의 이름을 다 불렀다.
그러곤 어른보다 더 충격을 받았을 어린이들에게 말했다.
"여러분이 이런 일을 이해하는 것은 무척 어려울 것입니다.
(…중략)
그들(승무원)은 지상의 험악한 굴레를 벗어던지고 신의 얼굴을 만지러 갔습니다(They slipped the surly bonds of Earth to touch the face of God. )."
레이건은 배우답게 우주선의 부실 사고를 영혼의 드라마로 극화했다.
국가 지도자의 멋있는 연설은 국민이 영원히 기억하는
역사의 러브 레터(love letter)다.
파리가 독일군에게 함락된 40년 6월 18일 아침 국방차관이던
드골 준장은 런던으로 탈출했다.
그는 런던 BBC 방송 스튜디오에서 국민에게 대독 항전을 호소했다.
"우리는 한번 전투에서 졌지만 전쟁에서 진 것은 아닙니다.
(…중략)
프랑스의 저항의 불꽃이 꺼져서는 안 될 것입니다."
호소 50주년인 90년 6월 18일 미테랑 대통령은
이 400단어짜리 호소문을 새긴 무게 3t의 동판을
파리 무명용사묘 위에 헌정했다.
영국인들에게도 역사의 러브 레터가 있다.
독일군이 파리를 향해 파죽지세로 돌격하던 40년 5월 13일
처칠은 총리 취임을 위해 하원에 섰다.
그는 말했다.
"내가 (국민에게) 드릴 수 있는 것은 피와 노고와 눈물과 땀밖에 없다
(I have nothing to offer but blood, toil, tears and sweat)."
드골과 처칠은 모두 풍부한 인문과학적 교양을 갖추고 있었다.
기자 출신인 처칠은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작가 모리스 드루옹은 드골에 대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철인(哲人) 황제로 불리듯
드골은 작가 대통령으로 알려질 것"이라고 평한 바 있다.
노 대통령이 영웅들과 어깨를 견주리라고 기대한 국민은 애당초 없었다.
그러나 국민은 최소한 그가 새 시대에 새로운 언어로
새 역사를 만들어가기를 바랐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대통령은 전임자에게 미칠 수 없는
저(低) 품격 언어로 시대를 거꾸로 돌려놓았다.
대통령의 의무 중 하나는 품위있는 언어로 국민의 자긍심을 높이는 것이다.
한국어에 관한 한 최고의 수호자요, 최상의 미용사는 국어학자가 아니다.
정치지도자다.
그들은 품격으로 한국어를 빛내야 한다.
처칠과 레이건이 영어를, 드골이 프랑스어를 가꾸었던 것처럼….
중앙일보 김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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