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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를 방문하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은 7일 동포 간담회에서 "북한에 핵무기가 있다고 할지라도 한국의 군사력은 충분히 균형을 이루고 있다. 북한은 한국과 전쟁을 붙어서 이길 수 없다. 설사 핵무기를 갖고 있다 하더라도 치명적인 상처를 입힐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이기지는 못한다. 더욱이 정복은 불가능하며, 정복은커녕 지배는 전혀 불가능하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이를 두고 많은 사람이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의 핵무기 인식에 문제가 있다며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전문가들도 북한의 핵무기를 용인하는 듯한 발언으로, 노 대통령이 핵무기의 가공할 파괴력을 간과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핵무기는 재래식 군사력으로는 도저히 대적할 수 없다는 것이 일반적 상식인데 한국의 군사력이 균형을 이루고 있다고 하니 대부분 사람이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다. 한나라당은 "몰상식의 극치"라며 원색적으로 비난하고 나섰다. 핵무기에 대한 대통령의 인식도 문제이지만 "치명적인 상처를 입힐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이기지는 못한다"는 말 자체도 어법상으로 성립하지 않는다. '치명적'이라는 것은 생명이나 성패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주는 것, 또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의 타격을 주는 것을 가리킨다. '치명적이다'고 하면 결정적으로 영향을 주어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상태가 돼 버리는 것을 뜻한다. '사람에게 치명적이다'고 하면 사람의 목숨을 앗아갈 정도라는 얘기다. '치명적인 상처를 입힌다'는 그 자체로 회복 불가능한 상태에 이르게 함을 뜻한다. 따라서 "치명적인 상처를 입힐지는 모르지만 이기지는 못한다"는 성립하지 않는다. '치명적'이면 회복할 수 없는 타격을 준다는 얘기이므로 당연히 이기는 것으로 귀결돼야 한다. '치명적이다'와 '이기지 못한다'는 서로 호응할 수 없다. '이기지 못한다'는 말을 하려면 앞에서는 거꾸로 '핵무기가 치명적이 아니다'고 하는 수밖에 없다. "정복은 불가능하며, 정복은커녕 지배는 전혀 불가능하다"도 어법상으로 성립하지 않는다. '㉠은커녕 ㉡도 불가능하다'는 식으로 하려면 ㉠보다 ㉡이 훨씬 작은 행위 또는 사실이거나 ㉡이 순서상 ㉠의 선행 단계에 있는 것이어야 한다. 전쟁을 한다면 정복을 하고 다음 단계로 지배를 하게 된다. 따라서 "지배는커녕 정복도 전혀 불가능하다"고 해야 일단 어법상으로 성립한다. 그래도 '정복'과 '지배'가 비교의 대상이 된다는 것 자체가 어색하다. 과거에도 "미국인보다 더 친미적인 한국 사람"이란 말을 한 적이 있다. 미국인에게 '친미적이다, 아니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에 이 역시 성립하지 않는다. '친미'의 비교 대상으로 직접 '미국인'이 될 수는 없다. 미국인이 아닌 지극히 친미적인 제3자가 나와야 한다. "치명적인 상처를 입힐지는 모르지만 이기지는 못한다"나 "지배는커녕 정복은 전혀 불가능하다"는 말도 이런 이상한 어법과 맥을 같이한다. 명연설은 아니더라도 지도자의 말은 고도로 정제되고 절제돼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는 국가 안위, 국민 생활과 직결되고 국민의 언어 정서에도 영향을 미친다. 격의 없는 말이라 해도 품위와 세련된 맛이 살아 있어야 한다. 다른 것은 차치하더라도 대통령의 말이라면 최소한 어법에는 맞아야 하는 것 아닌가. 배상복 기자 sbbae@joongan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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