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한 편의 詩

엄마의 반지

뚜르(Tours) 2007. 8. 31.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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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의 반지
    
    "엄마!.. 선물"  
    늦은 밤, 일을 마치고   피곤한 얼굴로 앉아계시는 엄마한테 다가갔습니다.   
    "선물? 니가 무슨?"  
    저는 의아한 얼굴로 바라보는 엄마의 손에다 제가 쥐고 있던것을 살며시 
    내려놓았습니다.   자그마한 링반지가   침침한 형광등불빛에 유난히 반짝
    거렸습니다.  "이거, 반지 아이가? 어디서 났노?"  엄마는 다시금 놀란 얼굴
    로 다시 쳐다보셨습니다.   
    그러고는 다시 한번 반지를 내려다 보시고는  "군인이 무슨 돈이 있다고 
    니가 이런걸..."   "엄마도 참, 그거 진짜 아니야. 내가 그냥,..  
    그냥 엄마 줄려고 탄피로 만든거여."    엄마 줄려고?  허나 실제론 엄마줄
    려고 만든 반지는 아니었습니다.  
    1994년 가을,  저는 경기도에서 근무하고 있던 군인이었습니다.   
    그 당시 저는 옆 발칸포대에서 근무하는  동기녀석을 집요하게 꼬드겨 
    일반소총 탄피보다  큰 발칸포탄피를 하나를 겨우 얻어냈습니다.   
    이유인즉 그걸로 링반지를 만들어   여자친구에게 주기 위해서 였습니다.   
    군대다녀오신분들 아시겠지만 그렇게 만들어다 주면 많이 감동받던 시절
    이었으니까요.   
    저는 탄피를 쇠톱으로 조심스레 잘라 줄로 밀고   사포로 닦아내기를 거듭
    해서  드디어 예쁘고 반짝거리는 반지를 완성했습니다.  
    휴가때 나가 여자친구에게 줄 반지선물을 생각하며. 그러나 막상 휴가때가 
    되자 여자친구는결별을 선언했고 얼굴 한번 보지 못한채 귀대 마지막날 호
    주머니에서 만지작거리던 반지를 엄마에게 드리고 말았던것 이었습니다.  
    생각같아서는 아무데나 던져버리고 싶었지만   너무 정성스레 만든것이어
    서   차마 버릴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 아들이 이걸 엄마줄려고 만들었다고, 진짜?"  엄마는 기특하다는 얼굴
    로 바라보시더니  반지를 손가락에 끼웠습니다.  "어, 좀 작네...  너, 혹시 
    이거 니 여자친구줄려고 만든거 아이가?"  
    저는 조금 뜨끔했습니다.  "아, 아이다. 가꺼는 줬다아이가. 이거는 내가 
    엄마줄라꼬 같이 만든거다.   
    엄마 손가락에 좀 작아서 그라지, 그냥 새끼손가락에 끼라."  엄마는 아시
    는지 모르시는지 피식 웃으며 좀 작아 보이는 반지를 억지로 약지 손가락에 
    끼우셨습니다.  
    하기야 작고 예쁜 여자친구 손에 맞춰 만들었기에 뭉특한 엄마의 손가락에 
    좀 작았겠지요  "아들! 하여튼 고맙대이. 우리 아들이 만들어준 반지라...  
    반지란 반지 다 팔아먹고 손이 허전했는데 우리 아들 덕에 손가락이 
    호사하겄네."  
    늘 고생만 하시던 엄마는 오랜만에   커다란 함박웃음을 아이처럼 지으셨
    습니다.   그 뒤로 몇년이 흘렀습니다.    학교를 마치고 사회 초년병 시절
    을 겪느라 날이힘든 하루, 더구나 IMF까지 겹치는 바람에 늘 시간에 쫓기
    며 살았습니다.    
    집안 형편은 별반 나아진게 없었고 시원찮은 아들땜에 엄마는 아직도 식당 
    아줌마로 파출부 아줌마로 일을 하고 계셨습니다. 아이고, 오늘은 유난히 
    쑤씨는구나. 
    
    저는 일을 마치고 와 늦은 저녁을 먹고 있었습니다. "엄마! 이제 일 그만해 라. 내가 벌잖아." "아직 괜찮다. 움직일 수 있을때 벌어야지? 내 손으로 벌때가 좋은거여... 아이고, 오늘은 유난히 결리는구나." "어디봐요! 내가 쫌 주물러줄께." 저는 저녁을 먹다 말고 엄마의 어깨로 달 려들었습니다. "이눔아, 놔두고 먹던 밥이나 먹어." "그라믄 아프다 소리를 하지 말든가." 저는 툴툴거리며 엄마의 어깨와 손을 주물렀습니다. "이게 뭐꼬?" 저는 엄마의 손을 주무르다 깜짝 놀랐습니다. 왼손 약지가 시퍼렇게 멍이 들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손가락엔 이미 칠 이 다 벗겨진 볼품없는 쇠반지가 끼어져 있었습니다. 그건 바로 제가 군대 있을때 해드린 반지였습니다. "이기 뭐꼬? 아직도 이걸 끼고 있었나, 이 손가락 부은거 봐라. 퍼뜩 빼라." 하지만 반지는 손가락에 꽉 끼어 이미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아야! 아프다. 놔놔라, 손이 부어서 글타. 붓기 빠지면 개안타." "이게 뭐시 괜찮노. 이건 금반지가 아니라 쇠반지란 말이다. 빨리 빼가 퍼뜩 버리라. 손가락 버린다." 저는 괜찮다는 엄마와의 실갱이 끝에 펜치를 찾아 조심스럽게 그 볼썽스 런 쇠 반지를 잘라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제야 반지 끼웠던 손가락에 핏기가 조금 돌았습니다. 엄마는 못내 서운 하셨든지 잘린 반지를 만지작거리며 혼잣말 처럼 중얼거리셨습니다. "그래도 즈그 아부지도 못해준 반지였는데......" 그까짓 쇠반지가 뭐라고, 목구멍에 쇳덩이가 울컥 걸리는 느낌이었습니다. 다음날이었습니다. "엄마 가자!"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엄마를 집앞에서 기다리다 다짜고자 엄마와 금은방에 갔습니다. "아저씨? 여기 쌍가락지 한쌍 주이소." 기어코 싫다는 엄마를 어르고 달래서 쌍가락지 하나를 샀습니다. 엄마는 굳이 큰것을 골라 손가락에서 절로 빠졌습니다. "엄마? 와 그리 큰 걸로 하노? 쑥쑥 빠지잖아." "그래야 나중에 손이 부어도 니가 안짜를 것 아니냐?" "......" 엄마는 예전의 그 아이처럼 크게 웃었고 저도 엄마를보고 마냥 좋아 웃었습 니다. "엄마! 나중에 내가 돈 많이 벌믄 다이아 반지 해줄께." "아눔아, 사람 이 분에 넘치게 살믄 죄 받는 거여. 나중에 니 마누라한테다 좋은 걸로 많이 해주그라." 집으로 돌아오는길에 엄마는 행여 반지가 빠질새라 두손을 꼭 쥐고 걸었습니다. 다시 몇 해가 흘렀습니다. 엄마가 갑자기 쓰러지셨다는 소리를 듣고 달려 갔을때 엄마는 병상에 누워 제대로 말한마디 못해보고 일주일 만에 잘 있으란 말한마디 없이 먼길을 떠나시고 말았습니다. "엄마! 엄마!" 더 이상 엄마의 이름은 되돌아 올 수 없는 메아리가 되었습니다. 엄마의 유품을 정리하며 서랍속에서 낯익은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건 제가 엄마에게 해준 쌍가락지였습니다. 한번이나 껴보긴 했는지 흠하나 없는 채 그대로 였습니다. 그리고 그 옆엔 화장지로 곱게 산 무엇인가가 있었습니다. 조심스레 화장 지를 풀어보니 거기엔 예전에 잘라버렸던 쇠반지가 들어있었습니다. 어디서 땜질을 했는지 잘린 부분이 뭉특하게 붙은 그 반지는 얼마나 닦았 는지 너무나 반짝거리고 있었습니다. 그 반짝거림이 꼭 엄마의 환한 웃음만 같았습니다. 엄마! 사랑합니다. 나의 엄마....... 오래된 이야기지만 너무나 감동적이어서 또 꺼내봤습니다. 아! 한번 가시면 영영 돌아올 수 없어서 영영 뵙지를 못하는 것을요.... 지금 이시간에도 너무나 애절한 삶을 사시는 모든 분들에게, 그래도 사람 답게 사실 수 있는날이 찾아오기를 너무나도 간절히 기도드려 봅니다. ~ 글 옮긴이, 작고작은 종. 다니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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