東西古今

감동 그리고 여유

뚜르(Tours) 2009. 7. 29. 07:53

기차역도 아닌 광야의 한 가운데서… 

 

살다 보면 때로는 아주 작아보이는 잔잔하고 짤막한 한편의 수필 가운데에서 커다란 교훈을 얻기도 한다.
다음 이야기가 바로 그런 예에 속하는 것일 것 같다.
미국 동북부의 로체스터라는 마을에서 캐나다 토론토로 여행했던 어느 외국인 한 분이 책을 통해 발표한 내용이 바로 그런 이야기이다.

로체스터 역은 하루에 장거리 열차가 8대 정도 지나가는 아주 작은 역으로,
그 중 한대는 캐나다를 향해서 북쪽으로 올라가고
나머지는 반대 방향인 뉴욕 시로 향한다.

 

“그날은 한가한 주중의 오후였으므로 대합실에도, 상·하행겸용 플랫폼에도
인적이 거의 없었지요.
열차가 예정시간보다 20분 늦게 도착했는데 60세 가량 되어 보이는 동양인 부부가 딸로 생각되는 여자와 함께 가뿐 숨을 몰아 쉬며 뛰어 오더군요.
그리고 열차 문이 천천히 열릴 때까지 짧은 시간 동안 아주 빠른 중국말로 이별인사를 주고받는 것이었어요.
열차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노부부는 손수건으로 눈언저리를 누르며 차창 밖으로 부지런히 손을 흔들어댔지요.

잠시 후 열차의 차장이 우리 차 안으로 와서 승객의 차표를 검사하기 시작했는데
차장은 중국인 부부의 표를 보더니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열차는 뉴욕으로 가는 차가 아닙니다.
반대편인 캐나다 토론토로 가는 열차입니다.’

중국인 부부는 얼어붙은 듯한 표정이 되어 서로의 얼굴만 바라보더군요.
누구든지 낯선 나라에 갔을 때 이런 일을 당한다면 당황하게 되는 것이 당연한 일이겠지요.
더구나 열차 시각표를 보니 뉴욕으로 가는 마지막 열차는 바로 그 시각에 로체스터에 들어가는 중이었으므로 다음 역에서 그 열차로 갈아 타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어요.
만약 내가 이런 상황에 부딪히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걱정하지 말고 제게 맡겨주세요.’하는 차장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열차 안의 다른 승객들도 모두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노부부를 바라보았지요.

잠시 후 우리는 열차가 조금씩 속도를 떨어뜨리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모두 어떻게 된 일일까 하며 창 밖을 두리번 거리더군요.
그리고 마침내 열차는 딱 멈춰 서 버렸습니다.
그곳은 역도 아니고 열차가 멈춰 설만한 곳도 아무 곳도 아닌 광야의 한 가운데였어요.
그러나 누군가 가리키는 방향을 내다보니 그 곳에는 또 한대의 열차가 맞은편에서 오는 다른 레일 위에 서 있더군요.
실은 그 열차야말로 중국인 노부부가 탔어야 할 뉴욕행 마지막 열차였던 것입니다.
조금 전 그 차장이 무선으로 연락해서 로체스터로 향하던 열차를 이런 곳에서 기다리도록 한 것이었지요.
이리하여 중국인 부부는 차장에게 이끌려 맞은편 광야의 한복판에서 무사히 열차를 바꿔 탈 수 있었습니다.
주변의 승객들도 안도의 웃음을 지었고 차 안 전체가 온화한 공기로 따뜻해지더군요.”

 

그 분은 미국에서 여행하는 동안 가게 점원들의 느린 태도나 열차의 잦은 연착으로 불쾌했던 적이 많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 날의 사건은 그 분에게 멋진 감동을 전해주었고,
오로지 스케줄에 묶여서 뛰어다니는 것보다는
곤란에 처한 사람을 위하여 멈추어 설 수 있는 여유여야말로
참으로 인간다운 마음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조금 늦어지면 어떻습니까. 그것이 사람을 위한 일이라면 좋지 않겠습니까.”


            신영철 지음 <신사장의 편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