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비빔밥 진주비빔밥
미국 디트로이트 인근 노바이는 중·상류층, 특히 일본인이 모여 사는 깨끗한 소도시다. 이곳 작은 상가 지하에 백인들이 더 많이 찾는 한식당 '비빔밥(Bibimbab)'이 있다. 한 시간을 차 몰고 와 먹는 건 예사다. 미국 최대 생활정보 검색사이트 YELP는 '비빔밥'을 '노바이 톱5 레스토랑'에 꼽았다. 주로 백인들이 YELP에 얼굴 사진과 함께 올린 이곳 비빔밥 평가는 "찾아간 보람이 있었다"는 호평 일색이다.
▶ "재료들이 저마다 생생히 씹히는 경이적 식감(食感)의 모험(Incredible texture adventure)"(조), "대단히 재미난 음식(Most fun food)"(제이슨), "한국 영화 '괴물'을 본 뒤 생애 첫 한국 음식으로 먹은 돌솥 비빔밥 정말 맛있었다"(사라)…. 비빔밥은 구석구석에서 세계인 입맛을 끌어당기고 있다. 필립 제임스 세계보건기구(WHO) 비만대책위원장이 "비만을 예방하려면 비빔밥을 먹어야 한다"고 할 정도로 웰빙식 이미지를 굳혔다.
▶ 사이버 외교사절단 반크가 얼마 전 외국인들에게 한국 14개 분야 중 가장 관심 있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41%가 음식을 꼽았다. 음식이 최고 관광상품이라는 얘기다. 독일계 귀화인인 이참 관광공사 사장이 국정감사에서 한나라당 최구식 의원으로부터 "전주비빔밥과 진주비빔밥 차이를 아느냐"는 질문을 받고 쩔쩔맸다고 한다. 최 의원은 "전주비빔밥은 더운 밥의 양반 음식이고, 진주비빔밥은 식은 밥과 내장탕에 먹는 서민 음식"이라고 설명했다.
▶ 비빔밥 하면 전주부터 떠올리지만 비빔밥처럼 지명이 다양하게 붙는 음식도 드물다. 사골국물로 밥을 짓는 전주비빔밥, 기름으로 볶은 밥에 닭고기를 얹는 해주비빔밥, 제사상 나물을 간장으로 버무린 안동 헛제사밥, 해초를 넣는 통영비빔밥. 제사 음식을 비비고 제탕을 나눠 먹었던 데서 유래한 진주비빔밥은 놋그릇에 오색 나물과 육회를 담아 '화반(花飯)'이라 불릴 만큼 화려하면서도 맛은 깔끔하다.
▶ 최구식 의원은 진주비빔밥 이야기를 꺼낸 이유가 "관광에서 '스토리텔링'이 매우 중요하다는 걸 말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임진왜란 때 진주대첩 이듬해 전투에서 민·관·군 7만이 순국하기 직전 소를 모두 잡아 골고루 나눠 먹었던 것이 진주비빔밥"이라며 "이렇게 비장한 이야기를 지닌 음식이 어디 있느냐"고 했다. 사연이 깃들면 관광상품의 가치도 커진다. 진주비빔밥뿐 아니라 다른 음식, 다른 명소에 두루 들어맞는 얘기다.
- 오태진 수석논설위원 tjoh@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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