東西古今

이어령의 한국인 이야기(17)

뚜르(Tours) 2010. 2. 23. 16:45

어린애들의 울음을 멈추게 하는 방법은 시대에 따라 다르다.
아직 말을 모르는 아이에게는 <에비>란 말이 있었다.
누구도 에비를 본 적은 없지만 그것은 철없는 애의 울음을 멈추게 할 만한 위력이 있었다.
虎患이 많았던 시절에는 <호랑이>가 에비였고, 엄격한 가부장 시대에는 <아버지>가 에비였다.
무서울 것이 없는 요즘 아이들에겐 에비나 애비 대신 <곶감>이겠지만(호랑이도 무서워 도망치게 했다는)
내가 자라던 일제 때만 해도 단연 <순사>란 말이었다.
나물 캐러 가는 누이를 따라가려고 떼를 쓰던 내 氣를 무참히 꺾어 버린 것도 그 공포의 에비 <순사 온다>란 말이었다.
순사는 언제나 까만 옷에 가죽 차양 달린 모자를 쓰고 사베르(칼을 뜻하는 프랑스 말 <사브르>의 일본식 발음) 소리를 내며 우리에게로 다가온다.
하지만 대갓집 막내아들의 기가 그 정도로 꺾인 것은 아니다.
<캐지 마. 그것은 紫雲英이란 말야. 그걸 캐면 간난이처럼 경찰서에 잡혀 가.>
다급한 누나의 소리 때문이었다.
녹비를 권장해 농작물 증산을 독려하던 제국주의 관리들은 자운영의 채취를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었고,
나는 실제로 순사가 간난이를 잡아가는 광경을 보고 떤 적이 있었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가 아니라 이미 잡초와 나물 한 포기에도 일본 관헌의 권력이 배어 있었다.

이 들판은 화담 서경덕(1489~1546) 선생이 나물을 캐다 종달새를 보고 자연의 氣 이론을 발견한 곳이 아닌가.
그렇다.
융희 3년에 나온 초등 修身책에 나오는 이야기다.
어린 시절 가난한 집에 태어난 화담 선생은 매일같이 나물을 캐러 다녔다는 것이다.
그런데 늘 바구니를 채우지 못하고 늦게 집에 돌아오는 바람에 부모님으로부터 추궁을 받고 이런 말을 한다.
<들판에 새들이 있어 보았는데 하루는 일촌, 이 일에는 이촌, 삼 일에는 삼촌으로 점차 나는 높이가 달라지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자세히 보고 그 이치를 알려고 궁리하느라 나물 바구니를 다 채우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교과서에는 그 새가 종달새였다는 것과 그것들이 점점 높이 날아다닌 것은 봄의 땅기운(地氣)이 상승하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다.

그런데 웬일인지 그 말을 들은 부모님의 반응에 대해서는 한마디 언급도 없이 다만 이야기의 제목에 格物이라는 말만 달아 놓았다.
이야기 속의 부모님도, 구한말의 선생님들도 서경덕 선생의 나물 바구니에 格物致知의 위대한 사상이 들어 있었음을 안 것이다.
요즘 가난한 부모였다면 틀림없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새가 밥 먹여 주느냐.
나물 캐다 말고 왜 한눈을 팔아.
높이 날면 어떻고 주저앉으면 어때?
그게 너와 무슨 상관이야.>

그런데 상관이 있는 것이다.
<인간의 앎(知)>은 사물을 자세히 관찰하는 데서 나온다는 격물치지의 사상이 그것이고,
후일 개성삼절로 숭앙받는 대학자, 그것도 독창적인 한국 지식인을 탄생시킨 힘이었다.
주자학에서 말하는 것이 다르고 양명학에서 풀이하는 것이 달라 사람마다 구구한 설을 늘어놓은 말이지만
화담 선생의 나물 바구니로 풀면 아주 쉽게 뚫린다.
나물 캐다 말고 한눈을 판 것을 성경 구절을 활용해 표현하자면
<사람은 나물만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앎(知)을 통해 살아가는 법>이기 때문이다.
종달새를 자세히 관찰하는 게 格物이라는 것이고,
그것으로 점점 높이 나는 종달새의 이치를 알아내려고 궁리하는 게 바로 致知다.
그래서 뉴턴은 사과 떨어지는 것을 보고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했지만,
화담 선생은 거꾸로 종달새가 위로 올라가는 것을 보고 자연의 氣에 대한 변화를 발견한 것이다.

나물 캐던 서경덕처럼 아이들은 누구나 자연의 사물을 호기심으로 바라본다.
<엄마 저게 뭐야>라고 물을 때는 격물의 단계이고,
그것이 새라는 것을 알게 되면 <새는 왜 울어>라고 묻는 것이 치지의 단계다.
이렇게 자연을 관찰해 궁극의 知에 이르는 격물치지.
義理 아닌 數理로 세상일을 풀어 가려던 서화담파의 기(물질) 중심 이론이 수신(도덕)책이 아니라 과학책에 수록됐더라면, 사람들이 황진이와 얽힌 야담책에만 정신을 팔지 않았더라면,
나는 그 무렵 그와 거의 동시대인이었던 콜럼버스코페르니쿠스다빈치의 꿈을 꾸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나의 꿈은 슬프게도 에비의 꿈이었다.
밤마다 자운영이 빨갛게 피어 있는 들판 저편에서 까만 옷을 입고 일본 순사가 쩔그럭쩔그럭 칼자루의 쇳소리를 울리며 나를 잡으러 오는, 식은땀 나는 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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