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간통죄 없는 사회
"정말 한심한 남자야!" 19세기 프랑스 소설 '보바리 부인'의 여주인공이 남편에게 실망해 내뱉은 탄식이다. '남자란 모름지기 모르는 것이 없고, 여러 가지 재주에 능하고 정열의 위력, 세련된 생활, 온갖 신비들로 인도해주는 능력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보바리 부인은 바람둥이 부자와 젊은 변호사 등을 애인으로 삼는다. 그러나 그녀는 애인들에게 버림받은 뒤 자살하고 만다.
▶'보바리 부인'의 작가 플로베르는 풍기문란죄로 기소를 당했다가 무죄 판결을 받았다. 선정성 논란을 빚은 문장은 고작 해야 '몸을 내맡겼다' 수준이었다. 보바리 부인처럼 현실과 이상을 구별하지 못하고 이상을 좇는 성향을 가리켜 '보바리즘'이라고 한다.
▶법무부 산하 형사법개정특별위원회가 최근 형법 241조 간통죄를 폐지하기로 내부 합의했다. 현재 간통죄는 율법으로 다스리는 이슬람 국가를 제외한 법치국가 중 한국·대만·미국 10여개 주에만 남아 있다. 외국에선 처벌 사례가 없어 '사문화(死文化)'됐다. 국내에서도 간통죄 기소가 1998년 2000여명에서 2008년 900명으로 크게 떨어졌고, 실형 선고도 10분의 1로 줄었다.
▶간통죄가 폐지돼도 간통의 자유화가 허용되는 건 아니다. 최근 국내에선 아버지의 불륜으로 어머니가 자살하는 등 정신적 피해를 봤다며 자식들이 위자료 청구 소송을 낸 사례가 있다. '윤리적으로 비난받을 순 있지만 손해배상을 해야 할 정도는 아니다'는 판결이 났지만 불륜은 이처럼 가족 해체의 비극으로 끝난다.
▶남편이 사생아를 집에 데려오는 1970년대 영화 '미워도 다시 한번' 같은 일은 이제 실제로 일어나기 어렵다. 1990년대 이후 한국 소설의 특징은 남편의 바람에 맞바람으로 대응하는 여성 소설이다. 바람난 여성 찬가가 아니라 가부장제에서 묵인되던 남성 중심 성문화에 대한 반발을 반영한다. 간통죄 폐지에 찬성하는 여성이라도 유부남의 매음(賣淫)까지 용인하는 건 아니다. 개인의 성적 결정권이 존중된다면 가정의 행복에 대한 개인의 선택 책임도 더 높아진다. 톨스토이는 소설 '안나 카레니나'에서 이렇게 썼다. '모든 행복한 가정은 엇비슷한 이유로 행복하고, 모든 불행한 가정은 제각각 이유로 불행하다.' 이제 대한민국 가정은 엇비슷한 이유로 행복할 것인가, 제각각 이유로 불행할 것인가 갈림길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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