東西古今

소비 트랜드

뚜르(Tours) 2010. 3. 31. 09:20

초인기 그룹인 소녀시대는 ’캔디컬러’로 불리는, 현란하고 화려한 색깔의 스키니진 유행을 선도했다그러더니 보라색 노트북과 주황색 자동차까지 등장했다.
불황이 아니었다면 이런 원색은 용납되지 않았을 것이다.
소비트렌드를 잘만 알아내고 예측하면 대박상품도 기획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고객중심 경영이라는 화두를 놓치지 않아야만 소비트렌드를 정확히 읽어낼 수 있다는 사실이 바로 그것이다.
KBS가 야심차게 준비했던 ’박중훈쇼’가 반면교사가 될 수 있다.
박중훈은 연예인 중에서 박식하고, 친화력이 강하고, 유머감각이 뛰어난 것으로 유명하다.
실제로 그동안 토크쇼에 절대 안 나왔던 장동건, 정우성, 김태희 등 톱스타가 오로지 박중훈 얼굴을 보고 출연했다.
하지만 최고의 PD와 작가가 투입된 드림팀, 일요일 저녁 9시라는 프라임 타임 배치 등 최상의 조건에도 불구하고 이 토크쇼는 시청자의 철저한 외면을 받았다.
그렇다면 이 토크쇼는 왜 흥행에서 참패한 것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시대를 못 읽었다’는 박중훈의 고백이 잘 말해주듯 소비트렌드에 안 맞았다."

김 교수는 이 프로그램의 대척점에 있는 것이 강호동의 ’무릎팍도사’라고 설명했다.
진행자가 박수무당 옷을 입고 있는 이 프로그램의 미덕(?)은 게스트를 코너로 몰아붙이는 거친 질문이다.
반면에 게스트 사생활 보호(?)를 실천한 ’박중훈쇼’는 너무나 점잖았고, 그래서 싱거웠다.
10년 전이었다면 호감을 샀겠지만 변화된 트렌드 앞에서는 속수무책일 수밖에.

"닌텐도 신화를 창조한 요코이 군페이는 ’훌륭한 상품이 많이 팔리는 것이 아니라 많이 팔리는 상품이 훌륭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와타 사토루 회장은 ’나도 엔지니어 출신이라 최첨단 기술을 좋아하지만 소비자들이 받아들이지 않는 기능은 아무 소용이 없다’고 강조했다.
GM, 코닥, 코카콜라, 스타벅스 등 글로벌 초우량 기업의 공통점이 무엇인줄 아는가?
과거에는 동종 업계에서 독보적 1위를 달렸지만 지금은 후발주자에게 위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펩시콜라는 게토레이를 비롯한 스포츠음료와 과즙음료 등 포트폴리오 다양화 전략을 통해 총매출액에서 코카콜라를 추월했다.
과거에는 공급이 수요를 창출했다.
하지만 세상은 이제 바뀌었다.
자동차를 ’만드는 것’보다 ’판매하는 것’이 더 중요해졌다."

마케팅의 발달은 사람들의 욕망을 한없이 부풀려 놓았다.
기업간 경쟁도 치열해졌는데, 한 우물만 강조하다간 도태되기 쉽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도 "10년 후에 무엇으로 먹고살아야 할지 모르겠다"고 고백하지 않았는가.
급변하는 소비자의 취향, 소비자 선택의 능동성 증대, 인터넷의 등장과 다방향 소통 등 트렌드 환경의 변화를 주목해야 하는 까닭이다.

"그렇다면 트렌드란 도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일정 범위의 소비자들이 일정 기간 동안 동조하는 변화된 소비가치에 대한 열망’을 뜻한다.
다시 말해 트렌드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고 여러 사람이 동조할 때 성립된다.
트렌드에는 몇 가지 유형도 있다.
우선 소수가 1년을 지속하면 패드(Fad),
상당히 많은 사람이 5년 이상 지속하면 트렌드(Trend),
이것이 10년 동안 지속되면 메가트렌드(Megatrend),
30년 이상 지속되면 문화(Culture)가 된다.
2002년 중국 상하이에서 파자마 패션이 유행한 적이 있는데, 아무리 웃겨도 여럿이 하면 패드나 트렌드가 된다.
때로는 신정아(명품 의상), 김경준(노타이 전용 와이셔츠), 신창원(쫄티), 린다김(선글라스) 등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켰던 인물들의 패션이 트렌드가 된다."

 

 

"미국 영화 ’웨딩 플래너’(2001년)에서 제니퍼 로페즈는 ’구찌’ 구두 한 짝에 목숨을 거는 현대 여성의 모습을 실감나게 연기했다.
이런 장면은 이제 ’영화 속의 여성’만이 아니라 ’현실 속의 남성’을 통해서도 자주 목격된다.
특정 상표가 붙은 자동차, 골프채, 카메라 등 이른바 ’명품’을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만족하는 남성들이 우리 주변에는 얼마나 많은가.
2006년과 2008년에 대중매체에서 잇따라 화제가 됐던 캐릭터도 최근의 독특한 소비행태를 반영한다.
점심은 싸구려를 먹어도 그것보다 훨씬 비싼 테이크아웃 커피를 반드시 마셔야 하는 ’된장녀’,
신상품이라면 사족을 못쓰는 까칠한 성격의 ’신상녀’가 바로 그것이다.
이 두 캐릭터는 인간 본연의 내재적 소비욕망을 상징한다."

지난 2006년부터 10월이 되면 다음해의 ’대한민국 소비트렌드’를 예측해 상징적인 키워드로 발표해온 김난도 서울대학교 소비자학과 교수에게 소비자학은 ’소비자의 복지증진을 위한 종합학문’이다.
그런데 ’소비자복지’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먼저 파악해둬야 하는 것이 있다.
’소비행태’가 그것인데, 소비행태론은 ’사람은 왜 소비하는가’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한 여성이 백화점에서 구두를 샀다.
그렇다면 그녀가 구두를 산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구두가 필요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언제나 ’필요하다’는 이유만으로 상품을 구매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2007년 한국 사람이 왜 명품에 집착하는지 연구한 저서 <사치의 나라-럭셔리 코리아>를 펴냈던 까닭도 여기에 있다. 당시 명품을 소비하는 패턴을 살펴보니 과시형(졸부로 불리는 신흥부자), 질시형(열등감이 강한 중산층), 환상형(유흥업 종사자와 청년층), 동조형(유행에 민감한 청소년층) 등 4가지로 분류됐다.
저서에서 ’명품에 대한 열정을 삶에 대한 열정으로 바꿔보자’고 호소했지만 반향은 적었다.
타인의 명품 선호는 비판하면서 정작 자신도 명품을 원하는 이중의식을 극복해야 할 필요성을 절감했다."

이어서 김 교수는 2008년 10월 발표한 올해의 트렌드 키워드 ’BIG CASH COW’를 소개했다.
이 10개의 알파벳 이니셜은 각각 (1)더 나은 나-스펙을 높여라 (2)내가 최고 (3)신(新)집으로 (4)인터넷의 범용화 (5)터프한 엄마와 자상한 아빠 (6)단순하고 소박한 행복 (7)취미에 빠지다 (8)클래식의 대중화 (9)무심한 듯 시크하게 (10)스타가 되고 싶어요를 의미한다.

"맨 앞의 B는 Better me의 이니셜인데, 학습열풍에 빠져 있는 대한민국의 트렌드를 상징한다.
실제로 요즘 대학생들은 고교 3학년 때보다 더 열심히 공부한다.
그런가 하면 열공 트렌드를 가리키는 각종 신조어도 등장했다.
직장에서 퇴근하면 영어학원이나 컴퓨터학원으로 출근하는 회사원을 뜻하는 샐러던트(Saladent),
늦은 나이에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기 위해 공부하는 사람들을 의미하는 리셋터(Resetter),
공부하지 않고 쉬는 것이 두려운 공한족(恐閑族) 등이 대표적 사례에 속한다.
불황이 계속될수록 자신의 스펙을 높이려는 몸부림은 더욱 강해질 것이다.
하지만 호황이었다고 하더라도 공부열풍은 잣아들지 않았을 것이다.
대한민국의 공부하는 DNA는 수천년 동안 축적되면서 선천적인 것으로 자리잡은 것 같다."

김 교수는 "대한민국의 사교육 문제는 어쩌면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것인지도 모른다"고 분석했다.
따라서 경쟁을 없애려고만 하지 말고 그 에너지를 개인의 성장, 사회와 국가의 발전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유도하는 지혜를 발휘할 것을 제안했다.
김 교수는 "세계적으로도 찾아보기 어려운 학습열풍은 우리에게 좋은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앞에서 열거한 10가지 트렌드 키워드를 한 단어로 요약하라면, 나는 ’자아(自我)’라고 말하겠다.
이 자아는 ’불황형 실존주의’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우선 정치, 경제, 사회의 불확실성이 증대하고 있고, 구조적 경제불황에 따른 사회적 위험도 증가하고 있다.
아버지로 상징되는 사회적 권위도 추락하고 있는데, 김수환 추기경 등 그나마 의지하고 싶었던 권위있는 지도자들이 타계한 것은 운명적이다.
신뢰의 근원으로 남은 것은 이제 자신뿐이거니와, 실존적 자아 찾기는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나아가 자아 찾기 노력과 더불어 휴브리스(Hubris, 인간의 오만) 극복의 자세도 요구된다.
트렌드의 변화를 읽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혁신하지 않는 사람과 기업은 언제든지 도태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자."            정리=정지환
lowsaejae@dreamwiz.com
 
                        김난도 / 서울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