東西古今

[동서남북] '자살 공화국' 오명을 벗으려면

뚜르(Tours) 2010. 4. 1. 01:16
강경희 경제부 차장대우

우울한 뉴스가 끊이지 않는 요즘 우리 사회의 우울증(憂鬱症)지수도 최대치에 근접해 있을 듯싶다. 그런 판에 탤런트 고(故) 최진실의 동생 최진영이 누나의 뒤를 이어 자살했다는 소식까지 접하니 한국인들 스스로 '온갖 역경을 이긴 덕에 심리적 내성(耐性)이 세계적으로 강하다'고 믿는 통념(通念)부터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을 구체적으로 뒷받침하는 사회 지표의 하나가 자살 사망률이다. 우리나라의 자살 사망자 숫자가 하루 35명꼴(2008년)이니 최진영의 자살 소식이 알려진 바로 그날도 알려지지 않은 34명가량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가늠해 볼 수 있다.

30년 전만 해도 '한국인은 강하고 낙천적(樂天的)인 민족'이라고 하면 틀린 말이 아니었다. 1982년 자살률은 인구 10만명당 6.8명으로 낙천적인 나라 스페인·그리스·이탈리아를 약간 웃돌거나 비슷한 수준이었다.

이 낙천적인 나라들은 경기(景氣)가 나빠져도, 실업률이 높아져도, 이혼이 늘어나도 자살이 그리 치솟지는 않았는데 한국 사회는 전혀 다르게 반응해 왔다. 1997년 IMF 외환위기로 특히 자살이 급증한 이후 상황은 계속 악화되어 왔다. 2008년에 인구 10만명당 자살자 수는 24.3명. OECD 30개국 가운데 가장 빠른 속도로 자살률이 늘어나 급기야 불명예스러운 1위까지 올랐다. 자살 충동을 느낀 사람은 인구 100명당 7.2명꼴에 달한다는 조사결과도 있다.

너무 살기가 힘들어, 견딜 수 없는 스트레스로, 가정 불화로 자포자기해…. 나약한 심성 탓이든 탈출구가 없는 상황 탓이든 자살의 사유는 제각각이지만 그 총합은 더 이상 개인 탓으로만 돌릴 수 없는 수위(水位)까지 이르렀다.

자살은 세계보건기구(WHO) 등에서도 범사회적 차원의 예방(豫防) 및 대책 마련을 권고하는 '국민 정신 건강'의 중요한 도전 과제다. 우리 정부도 '오는 2013년까지 자살률을 10만명당 20명 미만으로 낮추겠다'는 목표로 자살 예방 종합대책을 세웠지만 뚜렷한 성과를 내지는 못하고 있다.

자살이나 우울증을 개인적 문제로 여기는 사회 인식이 여전히 강한 데다 국민의 정신 건강을 체크할 인프라나 국가적 투자가 미흡(未洽)하기 때문이다.

한데 '높은 자살률'로 표출되는 국민의 허약해진 '정신 건강'은 국가 경쟁력이라는 틀 안에서 바라보고 더 적극적으로 대처할 필요가 있다. OECD는 자살과 우울증을 줄이고 국민 전체의 '정신 건강'을 높이는 것이 사회적 비용도 줄이고, 생산성을 높이는 길로 파악하고 있다.

각종 경쟁력 지수가 수위(首位)를 달리는 핀란드가 한때 '자살 수도'로 불렸고, 세계에서 처음으로 국가적 차원의 자살 예방 프로그램을 시행한 나라라는 사실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핀란드는 1950년대부터 30년 간 자살률이 계속 높아지자 1986~1996년에 범국가적인 자살 예방 프로그램을 시행했다. 1990년에 10만명당 30.3명이던 자살률을 2004년 20.4명까지 낮추는 데 성공했다.

일까 따이팔레 헬싱키대학 교수가 엮은 '핀란드 경쟁력 100'이라는 책에서는 이 자살 예방 국가 프로젝트를 핀란드 사회를 바꾼 혁신의 하나로 꼽는다. 경쟁력 있는 사회란 국민 개개인이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자신의 역량을 발휘하도록 적극 도와주는 사회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