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4년 12월 서독 루르 공업지대의 함보른시 강당에 300여명의 한국인 광부와 간호사들이 모였다. 우리 1인당 GDP가 80달러였던 시절, 차관(借款)을 얻으려고 서독을 방문한 박정희 대통령 내외를 맞는 행사였다. 매일 새벽 4시 막장으로 출근하며 "글릭 아우프(Glueck auf·살아서 돌아오라)!"를 인사로 주고받던 광부들은 고향서 온 부모를 맞는 것 같은 설렘과 감회에 빠졌다.
▶애국가를 부를 때부터 행사장엔 흐느낌이 시작됐다. 박 대통령이 인사말을 했다. "여러분, 우리의 가난을 한탄하지 마십시오. 이게 무슨 꼴입니까. 나라가 못사니까 젊은이들이 이 고생을 하는 걸 생각하니 내 가슴에서 피눈물이 납니다. 우리만은 후손들에게 잘사는 나라를 물려줍시다." 대통령도 울고 모두가 울었다. 한 해 파독(派獨) 광부와 간호사들이 벌어서 송금한 외화는 우리나라 상품 수출액의 10%에 이를 만큼 큰돈이었다. 낯설고 고단한 땅에서 열심히 살던 그들은 대통령의 한마디 한마디에서 더없는 위로와 힘을 얻었다.
▶지금도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가난한 나라 노동자들이 해외에서 벌어 고국으로 보내는 돈은 그 나라 살림에 큰 보탬이 된다. 1인당 GDP 500달러로 세계 최빈국(最貧國) 중 하나인 방글라데시는 이런 송금액이 매년 100억달러에 달한다. 우리나라에만 방글라데시 노동자가 불법체류자까지 합쳐 2만명 가까이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그제 서울 장충체육관서 열린 '2010 방글라데시 페스티벌'이 마침 방한 중인 셰이크 하시나 총리가 참석하면서 감격의 마당이 됐다고 한다. 방글라데시 노동자 1500여명 앞에서 하시나 총리는 "여러분의 노력 덕에 나라 경제가 발전하고 있다. 여러분 한명 한명이 한국에 와 있는 방글라데시 대사"라고 격려했다. "방글라데시는 결코 작고 가난한 나라가 아닙니다. 조국의 미래를 위해 함께 노력합시다." 참석자들은 "방글라데시 만세!"를 외치며 눈물의 만세삼창을 했다.
▶우리가 이만큼 살게 된 데는 100여년 전 하와이 사탕농장 노동자부터 파독 광부·간호사와 중동 근로자에 이르기까지 해외에 나가 피땀 흘린 이들의 노고가 있었다. 방글라데시 노동자들의 '눈물의 만세삼창'을 보며 우리가 독일에서 그들과 같은 심정으로 서로 부둥켜안고 설움에 북받쳐 울던 그때 그 시절을 떠올린다. 파이팅, 방글라데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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