東西古今

진짜 뜻 알면 ’깜놀(깜짝 놀람)’할 걸요?

뚜르(Tours) 2013. 6. 9. 00:52

"’빼도 박도 못하다’의 어원을 아세요? 차마 입에 담기도 어려운 말인데…."
신간 ’B끕 언어’를 쓴 권희린(30)씨가 비속어 몇 가지 예를 들다가 한 말이다.
’B끕 언어’는 서울 장충고 국어 교사 겸 사서 교사인 권씨가 비속어 67개의 어원과 의미를 파헤친 책이다.
’빼도 박도 못하다’는 난처한 상황을 뜻하는 관용구.
’빼지도 박지도→빼도 박도’로 굳어진 것이다.
"남녀의 성행위에서 비롯된 속된 표현인데, 뜻을 모르고 쓰니까 문제죠.
한자어 ’진퇴양난(進退兩難)’이나 순우리말로 ’옴짝달싹 못하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고 쓰는 게 좋죠."


평소 화장기 없이 털털한 옷차림이었던 권교사가 어느날 분홍색 원피스에 화장을 곱게 하고 교실에 들어오자 아이들이 술렁댄다.
한 학생이 “선생님, 오늘 쩔어요!”라고 말하자 교실 안은 웃음바다가 된다.
하지만 정작 교사는 애매하다.
예쁘다는 뜻일까, 아님 짜증난다는 뜻일까.
‘쩐다’는 말이 낯설었기 때문이다.
개기다, 띠껍다, 구리다, 뻘쭘하다, 삑사리, 얄짤없다, 꽐라, 존나, 쩐다, 쌩까다, 간지나다, 깝치다 ...


예를 들어 ’띠껍다’의 설명.
"어원: 전라도 사투리인 ’티껍다’에서 왔다.
더럽다, 매우 추하다, 아니꼽다는 뜻.
사용팁:
①동창회에 다녀오면 많이 사용하게 된다.
②부럽다는 증거로 보일 수 있으므로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③’띠꺼움 유발자’에게 직접 사용하지 않는다. 싸움 날 수 있다."


아이들이 가장 많이 쓰는 비속어는 ‘존나’다.
‘남성의 성기가 튀어나올 정도’라는 어원을 갖고 있으며 현재는 아이들에게 ‘아주’ ‘매우’와 동의어가 돼버렸다고 저자는 말한다.
학생들은 수업 중에 “선생님, 애들이 존나 떠들어요” “선생님 칠판이 존나 안 보여요”라는 말을 스스럼없이 한다.
정작 황당한 것은 저자의 다음 말이다.
“보통 이런 말을 하는 학생들은 그나마 수업 시간에 잘 참여하는 모범생들이다.
보통 공부할 마음이 없으면 수업 시간에 뭘 하는지 관심도 없고 선생님에게 질문도 하지 않는다.”


권씨는 "여중, 여고, 여대를 졸업하고 남학생만 득실거리는 학교에 왔더니 ’비속어 천국’이더라"고 했다.
수업 시간에 "선생님 자뻑 쩔어요!" "존나 웃겨요"라고 하는 학생들한테 잔소리를 하다가 문득 의문이 들었다.
그런데 왜 비속어를 쓰면 안 되지?
스스로 답을 찾다가 결론을 내렸죠.
"무조건 쓰지 말자가 아니라 제대로 알고 써야 한다고."
그래서 ’5분 비속어 수업’을 시작했다.
권씨는 지난해 2학기, 수업 시간에 하루 한 단어씩 비속어의 어원과 뜻을 가르쳤다.
’존나’가 욕인 줄도 모르고 남발하던 아이들이 뜻을 알고는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수업 끝나고 감상문을 받았더니 ’고치겠다’는 반응이 많았어요.
한 학기가 끝나자 아이들 입에서 비속어가 확연히 줄었고,
자발적으로 ’욕 안 하기’ 캠페인을 벌이는 학생들도 있었죠."
권씨는 "비속어의 어원은 대부분 정확하지 않아서 의미를 찾는 게 쉽지 않았다"며
"어른들도 제대로 알고 쓰자는 취지에서 책을 썼다"고 했다.


학생들을 지도하면서 자신도 많이 배웠고, 스스로 반성도 했다는 저자.
이를테면 수업시간에 분위기를 깨고 장난치고 웃는 학생에게 홧김에 “어디서 실실 쪼개고 있어?”라고 말했다는 것.
"’쪼개다’라는 말은 주로 강자가 약자에게 위협을 가할 때 많이 써온 단어다.
강하게 말해야 (학생이) ‘꼬리’를 내린다고 정당한 변명을 해보고 싶지만 나는 그 학생에게 강자이고 싶었던 거였다."


결과적으로 학생들은 비속어 사용을 조심하게 됐지만 저자는 “비속어 사용을 금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적절하게 사용하면 우리 대화를 말랑말랑하고 재미나게 만들어준다는 것.
국어교사로서 소신 발언인 셈인데 선뜻 동의하기는 어렵다.
책은 비속어를 ‘B끕 언어’라 칭하며, 싸이의 ‘강남스타일’처럼 B급 정서가 세계인을 움직인다고도 말한다.
“B급은 A급보다 솔직하고 당당하다”는 논리도 편다.
하지만 싸이의 B급 뮤직비디오는 ‘장난’이지만, B급 언어(비속어)는 ‘언어폭력’에 가깝지 않을까.


기고자: 허윤희 조선일보기자, 황인찬 동아일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