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8년 미국 LA 검시과(檢屍課)로 사망 원인을 알 수 없는 변사체가 들어왔다. 자살인지 사고사인지 모호했다. 검시과는 자살예방센터에 사인을 가려달라고 의뢰했다. 사망심리학자(thanatologist) 에드윈 슈나이드먼 박사는 이 사건을 맡으면서 '심리적 부검(剖檢)'이라는 말을 처음 썼다. '신체적 부검'에 대비되는 용어다. 죽은 사람 마음을 들여다보고 '왜 그랬을까'라는 질문에 답을 얻어내는 조사다. 주변 사람에게 꼬치꼬치 묻고 생전에 남긴 기록들을 낱낱이 살폈다.
▶심리적 부검에선 대개 유가족에게 수십 개 질문을 던져 죽은 이가 자살에 이르기까지 삶을 추적한다. "죽고 싶다"고 했거나, "잘 있으라"고 작별 인사를 했거나, 죽는 방법을 알아본 흔적을 찾아내 '자살 의지'를 객관적 수치로 나타낸다. 심리적 부검은 자살자를 둘러싼 보험금·유산·의료사고·산업재해 분쟁을 푸는 실마리가 된다. 이를테면 자살자가 회사 업무로 스트레스를 받아 목숨을 끊었다는 게 입증되면 회사가 민사 책임을 진다.
▶핀란드 정부가 1987년 자살 1379건을 5년 동안 연구한 것은 가장 성공적인 심리적 부검으로 꼽힌다. 수천 시간 조사한 결과를 바탕으로 1991년부터 5년간 국가적 자살 예방 프로젝트를 펼쳤다. "자살은 예방할 수 있다"는 믿음이 굳어졌다. 1986년 핀란드는 한 해 자살이 10만명에 30.3명꼴로 유럽 1위였다. 10년 뒤 자살률은 20% 넘게 떨어졌고 2012년엔 거의 절반으로 줄었다.
▶보건복지부가 아주대 연구팀과 함께 150건의 심리적 부검을 하기로 연구 용역 계약을 맺었다. 우리나라에서 처음 하는 대규모 심리 부검이다. 지금까지는 2009년 한국자살예방협회가 시범사업으로 7건을 한 것이 전부다. 우리 자살률은 2011년 31.7명으로 OECD 1위다. 자살이 암·뇌혈관질환·심장질환에 이어 사망 원인 4위다. 정부는 자살률을 낮추는 방법을 찾다 핀란드 사례에 주목했다.
▶아주대 연구팀은 용역 계약에 앞서 자살 55건에 대해 심리적 부검을 해봤다. 학교와 직장에 적응하지 못할 때, 걱정을 털어놓을 상대가 없을 때 자살 위험이 제일 컸다. 자살자들은 사방 얼음 절벽에 갇혔다는 느낌, 캄캄한 방에 혼자 내버려진 느낌이었을 것이다. 핀란드는 자살자 가족 80%가 심리적 부검에 협조하고 나섰지만 한국·중국·일본 유가족들은 자꾸 덮으려고 한다. '부검'이라는 말도 섬뜩하다. 자살자 심리 추적이 얼마나 긴요한 일인지 알리는 적절한 용어부터 찾아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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