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에 가면 원숭이 잡는 덫이 있습니다.
원숭이 손이 간신히 들어가게 구멍을 만들어 놓고 그 속에 과일 하나를 넣어 둔 것입니다.
별게 아닌 것 같지만 얼마 후 가보면 원숭이는 영락없이 잡혀 있습니다.
냄새를 맡고 온 녀석은 손을 넣어서 과일을 잡고 손을 빼려고 용을 쓰지만 결코 빠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과일만 놓으면 손을 빼서 달아날 수 있으련만 끝내 놓지 않습니다.
요즈음 가만히 보면 원숭이만 그런게 아니라 우리 사람도 ‘욕망의 덫’에 그렇게 걸리는 것은 아닌가 묻게 됩니다.
돈, 권력 그리고 이념이 과일처럼 그렇게 달콤한 때문일까?
그것 하나만 놓으면 세상 정말 편하게 존경받고 잘 살 것 같은 귀한 분들이 못그러니 말입니다.
그런데 원숭이 덫보다도 '욕망의 덫'은 훨씬 더 큰것 같습니다.
혼자만 걸려드는 것이 아니라 뒤에 줄 섰던 사람, 별 상관 없던 생사람들까지 죄다 끌려 들어가니 말입니다.
어쨌든 너무 많은 사람들이 덫에 치여 정신을 잃고 다급하게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을 보면
욕심을 못 버리게 만든 조물주의 심술이 아무래도 좀 심해 보입니다.
이 판국에 보수와 진보, 자유와 정의, 자유민주주의와 사회주의, 우익과 좌익, 신문과 방송의
두부 모 자르듯 편가르기가 도대체 무슨 소용있습니까?
집 짓는데 어디 나무 자르는 톱 하나만 필요합니까?
시끄러운 망치도 있어야지.
그리고 어쩌다 한번 망치에 손을 찧었다고 아예 그것을 내다 버릴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도구상자 속의 연장들은 당장은 아니더라도 때와 장소에 따라 각기 다 쓸모가 있습니다.
왜 꼭 하나만 택하라고 강요를 합니까?
불교 설화에는 이런 얘기도 있습니다.
홍수가 나서 모두들 죽는 판에 어떤 사람이 운 좋게도 쪽배를 타고 혼자 살았답니다.
그리고는 일생동안 자나깨나 그 쪽배를 등에 지고 다녔다나요?
그러니까 한번 구명정이 일생의 짐이 된 셈이지요.
비록 한 때 어느 연장 하나가 필요할지 몰라도 그것만 내내 차고 다니면 부담만 되는 게 아니겠습니까?
또 이 와중에 전·현직 대통령 탓만 하면 뭘 합니까?
모두 다 우리가 같이 뽑은 분들인데.
결국 누워서 침 뱉기지.
그리고 구구절절이 옳은 말씀이라도 그렇지, 서로 아끼는 마음에서 더 잘 해보자고 해야지 마음만 상하게 해서야 무슨 소용 있습니까?
우리가 어떤 국민입니까?
식민통치를 당하고 전쟁도 겪고 아무것도 내다 팔 것 없이 지지리 복도 없다던 우리가 이만큼 살면 그래도 대단한것 아닙니까?
미국이 어떻고, 일본이 어떻고, 또 요즘 중국이 어떻든간에 우리도 참 괜찮은 나라 아닙니까?
서로 상처 안내고 다른 연장들도 쓸만하다고 여긴다면 다들 더 잘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비판하지 말라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다른 시각은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밤하늘의 별들도 제대로 관측해 내려면 다른 각도에서 사진을 찍어야 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어찌 내 것만 바른 학문이요 남의 것은 삐뚤어진 학문이라 하겠습니까?
게다가 또 왜 앞다투어 원색적 신앙 간증까지 해가며 줄줄이 편들기 패싸움을 계속해야 합니까?
도대체 학문이 무엇이기에.
“학문이란 것은 배우면 배울수록 나날이 번거롭게만 될 뿐이요, 도는배우면 배울수록 나날이 간략해진다”,
일찍이 노자도 말하지 않았습니까?
이 시대에 정작 필요한 것은 남을 시시비비 분별짓는 한가지 학문의 덫이 아니라,
남과 더불어 사는 도구 상자의 지혜가 아니겠습니까?
그래도 정 아니라면, 그냥 서민들처럼 제발 다 좀 잘 되라고 간절히 빌면서 기도를 해보는 것은 어떻습니까?
김종서 /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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