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포 클럽’은 남북전쟁 때 미국에서 만들어진 동호인 모임이다.
전쟁이 끝나고 대포 개발의 명분을 잃자 클럽 회원들은 기상천외한 계획을 궁리해 낸다.
달에 포탄을 쏘아올리자는 것이다. 정확히 겨냥해 초속 12㎞의 속도로 포탄을 발사하면 달에 도달할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이어 포탄을 타고 달나라에 가겠다는 자원자가 등장하고 사상 최초의 유인 우주선 발사가 될 계획의 실현을 위해 세계적인 모금이 벌어진다.
물론 현실은 아니고 프랑스 작가 쥘 베른의 소설 ’지구에서 달까지’ 얘기인데 나라별 모금 액수가 재미있다.
미국에서는 모금 사흘 만에 400만 달러가 모였다.
프랑스는 계획이 터무니없다고 온갖 코미디 소재로 조롱하더니 그래도 23만 달러나 모금했다.
프로이센은 18만 달러를 모아 신무기에 열렬한 지지를 표시했고 네덜란드는 4만 달러를 현금으로 낼 테니 5% 깎아달라고 요구했다.
교황령은 천동설(天動說)을 우겨댄 죄과로 7000달러나 기부해야 했고
스위스는 달에 포탄을 쏘아보낸다고 달과 장사할 수 있느냐며 50달러만 냈다.
잘못하면 달이 지구에 추락할까 두려워한 스페인은 11달러를 모금했을 뿐이었다.
각국의 국민 기질을 풍자한 베른의 유머가 돋보이지만 적어도 미국에서 가장 많은 기부금을 모은 건 현실적으로도 부정하기 어렵다.
미국은 그야말로 기부의 나라다.
신자유주의의 본산으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어도 오늘날 미국을 만든 발판은 분명 기부 문화였다.
미국의 한 해 기부금 액수는 2000억 달러 규모다.
우리나라 국민연금기금 총액과 맞먹고 미국의 대(對)중국 무역적자액에 해당하는 액수다.
중국에 물건을 좀 덜 팔아도 사회가 굴러갈 수 있다는 얘기다.
미국 기업들에 사회 환원은 일종의 불문율이다.
제아무리 돈을 벌어도 사회에 기여한 게 없으면 존경받지 못한다는 뜻이다.
록펠러.카네기.빌 게이츠.워런 버핏.마이클 무어.제임스 스타우어 등 웬만큼 이름이 알려진 기업가들 중
사회 기부를 외면한 이는 극히 드물다.
보험 세일즈맨으로 27세에 억만장자가 된 폴 마이어는 아예 자선을 위해 돈을 버는 사람이고,
세계 최대의 인터넷 경매 사이트인 이베이의 창업자 피에르 오미디어는 재산의 99%를 생전에 기부하겠다고 약속할 정도다.
재산가들의 이런 ’노블레스 오블리주’보다 더욱 값진 것은 미국 사회에 늘어선 개미 군단의 기부 행렬이다.
전체 기부금 중 개인 기부가 80%로 법인 기부를 압도한다.
또 개인 기부자들의 80%는 일회성이 아닌 정기적 기부자들이다.
동네방네 흔한 게 소득의 1%를 기부하는 ’1% 클럽’이다.
애초부터 귀족 계급이 따로 없이 천부적 시민 자격을 부여받은 미국인들에게
특정 계층에 사회적 의무를 요구하기보다 스스로 사회에 무엇을 기여할 것인가를 더 중히 여기는 풍토는 당연할지도 모르지만 기부 문화가 척박한 우리네 현실에서는 부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가끔 평생 안 먹고 안 입으며 모은 수십억원을 기부하는 ’김밥 할머니’들이 사회를 감동시키기도 한다.
외환위기 때는 들불처럼 일어난 ’금반지 모으기 운동’이 세계를 놀래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은 ’A매치’에만 열광하고 K-리그 운동장은 파리를 날리는 것만큼이나 부자연스럽다.
지난 10년 동안 꾸준히 기부를 해온 것이 어느새 30억원에 달한다는 가수 김장훈씨의 경우가 보다 감동으로 와 닿는 이유가 그것이다.
일회성 대형 행사보다 작은 정기 봉사가 진정 사회를 업그레이드시키는 힘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포 클럽에서 가장 박식한 회원은 "얼마나 존경받느냐는 그 사람이 고안한 대포의 무게에 비례하고 포탄이 도달하는 거리의 제곱에 비례한다"고 말했다.
뉴턴의 만유인력의 법칙을 패러디한 것인데 이렇게 고쳐져도 될 법하다.
"얼마나 존경받느냐는 그가 기부한 액수에 비례하고, 기부해 온 기간의 제곱에 비례한다."
이훈범 / 중앙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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