東西古今

리더십에서 가장 중요한 건 상대방 신뢰

뚜르(Tours) 2014. 4. 15. 23:40

1859년 여름, 한 곡예사가 나이아가라 폭포에 설치해 놓은 밧줄 위를 걸어 미국에서 캐나다로 건너가는 흥미진진한 사건이 벌어졌다.
생각만으로도 아찔한 줄타기 곡예를 벌인 주인공은 프랑스 출신의 곡예사 찰스 블론딘.
그는 공중에 설치해 놓은 밧줄 위에 서서 온갖 위험한 동작을 해내며 19세기 유럽과 미국에서 열광적인 인기를 얻었다.

블론딘이 세계 최초로 시도한 나이아가라 외줄타기 곡예 현장에도 수많은 사람이 몰려들었다.
이곳에는 무려 48m 높이에 로프가 설치됐다.
그는 약 18kg 무게의 장대로 균형을 잡은 채 한 발 한 발 밧줄 위를 걸어 폭포를 건너갔다.
드디어 맞은편에 블론딘이 도착하자 관중은 우레와 같은 박수와 환호성을 보냈다.
열광하는 관중의 성원에 보답이라도 하듯 블론딘은 뒤로 걸어 건너기, 안대를 하고 건너기, 자전거를 타고 건너기 등 다양한 방법으로 나이아가라 폭포를 자유자재로 왔다 갔다 했다.

모든 곡예가 끝날 때쯤 되자 블론딘은 구름처럼 모여 있는 관중을 향해 소리친다.
"당신들은 내가 사람을 등에 업고 이 폭포를 건너갈 수 있다고 믿습니까?"
그러자 관중은 "믿습니다"라고 외쳤다.
그러자 블론딘은 "그럼 내 등에 업혀서 나와 같이 이 폭포를 건너갈 사람 한 분만 나와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외친다.
하지만 관중은 이내 침묵에 잠겨 블론딘의 시선을 애써 외면한다.

자원자가 아무도 없다고 판단한 블론딘은 관중 가운데 서 있는 한 남자에게 "당신은 날 믿습니까?"라고 묻는다.
해리 콜코드라는 이름의 그 남성은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난 당신을 믿습니다. 기꺼이 당신 등에 업히겠습니다"라고 말하며 블론딘의 등에 몸을 맡긴다.

남자를 등에 업은 블론딘은 이제까지보다 훨씬 더 신중하게 로프에 올라 한 발 한 발 내딛기 시작한다.
결과는?
블론딘은 나이아가라 폭포를 건너는 데 성공했고 이를 숨죽이며 지켜보던 관중이 환호했다.

콜코드가 블론딘의 등에 업혀 나이아가라 폭포를 건널 수 있었던 용기는 어디에서 나왔을까.
당시 관중은 몰랐지만 사실 콜코드는 블론딘의 매니저였다.
따라서 그가 콜코드에게 자신을 맡겼던 건 아마도 매니저로서 "내가 이 순간에 저 친구의 등에 업혀 강을 건너지 않는다면 수많은 청중이 실망하게 될 거야…. 그러면 아마 우리 비즈니스는 끝날지도 몰라…" 하는 지극히 계산적인 마음에서 나온 행동이었을지 모른다.
이처럼 내가 타인을 신뢰한다는 것은 역으로 그 사람을 신뢰하지 않거나 신뢰가 깨졌을 때 내가 감당해야 할 부정적인 결과가 너무 크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이를 가리켜 리더십에서는 저지(沮止)에 기초한 신뢰(deterrence-based trust)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런 신뢰는 깨질 가능성이 가장 높다.
학자들이 이런 유형의 신뢰를 가장 낮은 수준의 신뢰로 분류하는 이유다.

콜코드가 블론딘을 신뢰해 자신의 목숨을 맡긴 두 번째 이유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건 아마도 블론딘이 가지고 있는 줄타기에 대한 뛰어난 역량일 수 있다.
이를 역량에 기초한 신뢰(competence-based trust)라고 한다.
매니저로서 콜코드는 블론딘이 여러 해에 걸쳐 아주 어려운 상황에서도 침착하게 줄타기를 하는 모습을 수도 없이 많이 봤을 것이다.
둘 사이가 아무리 친했고 블론딘이 아무리 좋은 성격을 가지고 있었어도 그의 줄타기 역량을 믿지 못했다면 세기의 줄타기 장면은 연출되지 않았을 확률이 높다.

콜코드가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블론딘을 신뢰할 수 있었던 세 번째 이유는 오랜 기간 그의 매니저로 일하며 그를 지켜본 결과로 얻은 지식 때문일 수도 있다.
이를 지식에 기초한 신뢰(knowledge-based trust)라고 부른다.
우리는 어떤 사람과 정기적으로 상호작용을 하면 그 사람에 대해 많은 지식을 얻게 된다.
예를 들면 그 사람이 어떤 가치관을 지니고 살아가며 어떤 행동을 주로 하는지 등이다.
이렇게 사람에 대한 지식이 쌓이면 앞으로 그 사람이 어떤 상황에서 어떤 행동을 주로 할 것인지 짐작할 수 있게 된다.
그 사람에 대한 축적된 지식은 그 사람의 행동에 대한 예측 가능성을 높이게 되고 이는 신뢰로 이어진다.

마지막으로 콜코드가 블론딘을 신뢰한 이유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건 블론딘이 줄타기에 대해 가지고 있는 열정과 철학을 콜코드 역시 깊이 공유해 정신적인 동지가 됐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이를 일체감에 기초한 신뢰(identification-based trust)라고 말한다.
이는 감성적인 교류, 상호 이해, 가치관의 공유 등에 기초한 신뢰를 뜻한다.
즉, 단순히 그 사람의 철학이나 가치관 등에 대해 아는 정도를 넘어 그것들을 깊이 공유하는 훨씬 고차원적인 수준에 도달할 때 비로소 형성되는 신뢰다.
이런 측면에서 일체감에 기초한 신뢰는 가장 높은 수준의 신뢰 유형인 동시에 가장 지속가능한 신뢰라고 할 수 있다.

신뢰의 사전적 의미는 ‘굳게 믿고 의지함’이다.
단순히 믿는 것은 상대적으로 쉬운 일이지만 콜코드처럼 신뢰를 바탕으로 상대에게 전적으로 의지하는 행위를 하려면 그 사람의 진정성, 태도, 역량, 경험 등 다양한 요소가 고려돼야 한다.
즉, 신뢰에는 내가 100% 통제권을 갖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도 상대방이 나의 이해관계를 증진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행동하고 결정할 것이라는 믿음이 담겨 있다.
같은 맥락에서 부하가 리더를 신뢰한다는 것에는 리더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스스로를 취약한 상태로 만들어도 그 리더가 배신하지 않을 것이란 기대가 포함돼 있어야 한다.

이 때문에 많은 리더십 학자들이 “신뢰는 리더십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라고 입을 모은다.
오늘날 리더들은 신뢰가 효과적인 리더십의 가장 중요한 전제조건이자 가장 중요한 결과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정동일 / 연세대 경영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