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일본 총리가 박근혜 대통령을 만나 "반갑스무니다" 했을 때 별 감동이 없었다. 그는 올 2월 "(위안부 강제 동원을 인정한) ’고노 담화’를 검증하겠다"고 말했다. 일본이 위안부 소녀를 끌어갈 때 "(군경이 힘으로 사람을 질질 끌어가는) ’좁은 의미의 강제성’은 없었다"고 억지를 썼다.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그는 "고노 담화를 수정할 생각은 없다"고 한발 물러섰다. 그러면서도 지난 1일 "검증은 예정대로 진행하겠다"고 했다.
이런 일을 겪으면 한국인은 혈압이 솟는다. 어쩌다 아베가 잠잠할 때는 아베가 중용한 각료들이 나와서 못된 소리를 한다. 이쪽의 분노가 사그라질까 봐 잊지 않고 연료통을 채워주는 사람들 같다.
우리는 그때마다 이념과 진영과 지역을 넘어 한목소리로 일본을 욕한다. 일본 사람들의 편지글을 모아놓은 ’가끔 쓸쓸한 아버지께’란 책에 ’남기신 빚이 남은 가족 모두의 단결에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라는 대목이 나온다. 역설적으로 우리도 아베를 욕하느라 모처럼 하나가 되곤 한다.
문제는 아무리 화를 내도 왠지 허무하다는 느낌이 든다는 점이다. 그 느낌은 뭔가가 빠졌다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우리는 분노만 하고 자성(自省)은 하지 않는다.
혼마 규스케(本間九介)라는 일본 낭인이 1893~1894년 동학혁명 전후 한국을 정탐하고 ’조선잡기’라는 책을 썼다. 그는 일본의 척후병이자, 영국 역사가 에드워드 기번을 탐독한 먹물이었다. 그가 간결한 문장으로 써 내려간 ’조선잡기’를 읽고 있으면 영리한 악당에게 잘 드는 칼로 마취 없이 수술당하는 느낌이 든다.
혼마의 주장은 무시하고 그가 기록한 사실만 보기로 하자. 우리는 약하고 누추했다. ’세계가 이미 총과 포로 무장했을 때 조선 군대는 칼·창·활로 무장했다. 그나마 칼과 창은 요식으로 갖췄을 뿐 평상시에 연습하는 무인은 극히 적었다. 활 잘 쏘는 사람은 많았지만 활쏘기 노름이 유행해서지 국방과 치안에 요긴해서는 아니었다.’(180쪽) ’주막에서 종이돈을 꺼내 보여주자, 조선 사람들이 "이게 돈 맞느냐?"며 깜짝 놀랐다. 그들은 무거운 엽전을 지고 다녔다. 한 사람이 15관문 이상 지니고 다닐 수 없어, 도적을 만나도 그보다 더 털리진 않았다.’(118쪽) 인천시가 펴낸 사료집을 보면 그때 돈 1관문은 31전(錢)이었다. 15관문은 개항장 조선인 짐꾼의 9~10일치 품삯이었다.
혼마가 책을 쓴 지 반 세대 만에 우리는 일본에 나라를 뺏겼다. 위안부 소녀들이 끌려간 건 그 밑에서 허덕이며 다시 한 세대를 보낸 뒤였다.
우리가 아베에게 분노하는 건 옳고 당연하다. 다만 그게 전부여선 곤란하다. 일본에 분노하는 것과 동시에 ’그때 우리는 왜 스스로 지키지 못했나’ 되돌아봐야 한다. 조선 사람들이 일본에 대비해 성곽을 쌓는 걸 보고 혼마는 거의 측은해했다. ’참으로 불쌍하다. 야전포 한 발이 이 성곽을 능히 무너뜨린다는 것을 모르는가.’(258쪽) 우리는 이런 불편한 반성을 거의 안 한다. 아베만 욕한다. 그건 참 쉽다.
<김수혜의 트렌드 돋보기>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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