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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7일, 오늘의 묵상(연중 제23주일)

뚜르(Tours) 2014. 9. 6. 21:55

 

    오늘의 묵상(연중 제23주일)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죄와 용서에 대한 이중의 사명을 촉구합니다. 우리는 형 제가 잘못을 저질렀을 때 그저 방관하거나 외면할 것이 아니라 잘못을 깨닫고 회 개하여 올바른 삶으로 돌아오도록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가 잘못했을 때 사랑으로 충고하는 형제들에게 분노하거나 완고한 모습을 보일 것이 아니라 그 말을 귀여겨들어야 합니다. 주님의 품속에서 회개와 용서의 삶을 살아가기를 다짐하며 사랑의 성사인 미사에 정성껏 참여합시다. 말씀의 초대 에제키엘 예언자는 이스라엘 민족의 파수꾼 역할을 하는 자신의 엄중한 책임에 대하여 말한다. 예언자가 악인에게 그의 죄에 대해서 하느님을 대신해 엄하게 경 고하는 소명에 충실하지 않으면 그 죄가 예언자 자신에게 돌아갈 것이다(제1독 서). 바오로 사도는 아무에게도 빚을 지지 말아야 하나 사랑의 빚은 예외라고 말 한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다(제2독서). 예수님께서는 형제, 곧 교우들의 죄에 대한 우리의 의무를 알려 주신다. 형제가 죄를 지으면 깨우쳐 주어야 한다(복음). 제1독서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 사람의 아들아, 나는 너를 이스라엘 집안의 파수꾼으로 세웠다. 그러므로 너는 내 입에서 나가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나를 대신하여 그들에게 경고해야 한다. 가령 내가 악인에게 '악인아, 너는 반드시 죽어야 한다.'고 할 때, 네가 악인에 게 그 악한 길을 버리도록 경고하는 말을 하지 않으면, 그 악인은 자기 죄 때문에 죽겠지만, 그가 죽은 책임은 너에게 묻겠다. 그러나 네가 그에게 자기 길에서 돌아서라고 경고하였는데도, 그가 자기 길에 서 돌아서지 않으면, 그는 자기 죄 때문에 죽고, 너는 목숨을 보전할 것이다."(예 제 33,7-9) 제2독서 형제 여러분, 아무에게도 빚을 지지 마십시오. 그러나 서로 사랑하는 것은 예외 입니다. 남을 사랑하는 사람은 율법을 완성한 것입니다. "간음을 해서는 안 된다. 살인해서는 안 된다. 도둑질해서는 안 된다. 탐내서는 안 된다."는 계명과 그 밖의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그것들은 모두 이 한마디 곧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 랑해야 한다."는 말로 요약됩니다.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저지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 (로마 13,8-10) 복음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네 형제가 너에게 죄를 짓거든, 가서 단둘이 만나 그를 타일러라. 그가 네 말 을 들으면 네가 그 형제를 얻은 것이다. 그러나 그가 네 말을 듣지 않거든 한 사람이나 두 사람을 더 데리고 가거라. '모 든 일을 둘이나 세 증인의 말로 확정 지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가 그들의 말을 들 으려고 하지 않거든 교회에 알려라. 교회의 말도 들으려고 하지 않거든 그를 다른 민족 사람이나 세리처럼 여겨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내가 또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마태 18,15-20) 오늘의 묵상 오늘의 독서를 묵상하면서 이웃 사랑의 계명이 세상에 대한 우리 그리스도인의 엄중한 책임이라는 사실을 거듭 깨닫습니다. 이웃 사랑은 감상적인 느낌이나 기분 내킬 때 베푸는 시혜가 아닙니다. 서로서로 지고 있는 외면할 수 없는 '사랑의 빚' 을 똑바로 인식하고 실행하는 수고와 용기를 요구하는 실천입니다. 우리가 기꺼이 지고 가야 하는 사랑의 빚은 오늘 제1독서와 복음에 나오듯 두 가지 측면이 있습니다. 이는 예언자가 파수꾼의 두 가지 역할을 지니는 것과도 같 습니다. 파수꾼은 불의를 저지르는 자들에게 그들의 잘못을 분명하게 지적하고 회 개하도록 해야 합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우리 그리스도인과 교회에 맡기신 사명이 기도 합니다. 또한 파수꾼은 불의로 말미암아 고통 받는 형제들을 자신의 안위를 돌보는 것에 앞서 지켜 주어야 합니다. 이처럼 사랑은 근본적으로 사회적 차원의 깨달음과 실천을 품고 있습니다. 불의 에 대한 비판과 저항, 고통 받는 이들에 대한 깊은 연민과 연대가 있을 때 이웃 사 랑은 그저 아름다운 말이 아니라 뼈와 살을 가진 실재가 됩니다. 그러기에 억울한 희생자들에 대하여,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공범'이 된 사회적 불의에 대하여 기억 하고, 각성하고, 행동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세월호'의 참극은 이런 의미에서 오랜 시간 우리가 기억해야 할 상징이라고 생 각합니다. 슬픔과 분노의 바다가 우리에게 다가온 사월의 그날 이후, 아우슈비츠 수용소 생활의 기억을 고통스럽게 안고 살았던 이탈리아의 유다계 지식인 프리모 레비의 책을 다시 꺼내 읽었습니다. 마음을 저미는 그의 시 '고통의 나날들: 까마 귀의 노래 2'의 처음과 끝을 음미해 봅니다. "그대가 버텨 온 날들은 얼마나 되는가?/ 나는 하나씩 세어 보았네./ 서로가 서로 에게 의지해 왔던 고난의 세월/ 아무도 막을 수 없었던 어둠의 나날들/ 서서히 밝 아 오는 새벽에 대한 공포감/ 그대를 기다리는 내 기다림의 불안감들/ (중략) 비록 그대의 꿈들이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가을 낙엽이 구르고 시계가 멈추더라도/ 그대 의 몸이 쇠락하고 삶의 마감이 오더라도/ 그대의 세상마저 저물어 새벽이 오지 않 더라도/ 난 옆에서 그대를 지켜보고 있겠네." ------------------------------------------------------------------- 오늘의 기도 "아버지, 성자의 이름으로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 들어주시니, 저희에게 새 마음과 새 영을 넣어 주시어, 모든 율법을 요약하는 사랑의 계명에 충실하며, 언제나 형제들의 구원을 위하여 헌신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천주로서 영원히 살아계시며 다스리시는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2014. 9. 7. Martinus

    대영광송 / GLOR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