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이 오면, 그 날이 오면은/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 날이....../그 날이 와서, 오호 그 날이 와서/육조앞 넓은 길을 울며 뛰며 딩굴어도/그래도 넘치는 기쁨에 가슴이 미어질 듯하거든......
일제 강점기를 살았던 작가 심훈이 1930년 민족의 독립을 갈망하며 쓴 ‘그날이 오면’이란 시다.
심훈이 말한 ‘그 날’은 1945년 8월 15일에 왔다. 광복절, 일제의 압제에서 벗어난 나라를 되찾은 이 날은 한민족에게 가장 감격스러운 날이다. 특히 올해는 광복 70주년을 맞는다.
이런 의미 때문에 과거 정부 때도 광복절을 기념해 성대한 기념행사가 열리곤 했다. 이 중 빼놓을 수 없는 게 기념우표와 주화 발행이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는 옛말처럼 예전에 발행된 광복절 기념 우표와 주화를 보면 각각의 시대상을 볼 수 있다. 올해 광복 70주년을 앞두고 광복 기념 열기가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역대 우표들을 통해 그 시절의 시대상을 짚어본다.
◆최초로 발행된 1955년 기념 우표
최초의 광복절 기념우표는 전후이던 1955년 발행된, 광복10주년 기념 우표다. 디자인은 비교적 평범하다. 휘날리는 태극기와 함께 독립문을 그려 넣은 우표가 독립국가 대한민국을 상징한다.
▲ 광복 10주년 기념 우표
특이한 건 화폐단위와 연도 표시다.
우선 연도는 서기 1955년가 아닌 단기 4288년으로 표시돼 있다. 우리나라는 건국 직후 정부 공식문서에서 단기로 연도를 표시하다가 1961년에서야 서기로 바꿨다.
화페 단위도 눈에 띈다.
당시 환이라는 화폐 단위가 사용됐는데, 우표는 40환과 100환짜리 2종류가 발행됐다. 환이라는 화폐단위가 등장한 건 6.25 전쟁 때문이었다.
우리나라 화폐 단위는 1950년 한국은행권 '원(圓)'이 발행되면서 원으로 시작됐다. 이후 1953년 한국전쟁으로 인한 경제위기를 타개하기 위하여 '대통령 긴급명령 제13호'에 의해 100원을 1환으로 바꾸는 조치가 있었다. 즉 광복10주년 기념우표가 발행되던 1955년 무렵에는 ‘환’이 공식 화폐단위였다. 이후 1962년 다시 10환을 1원으로 바꾸는 긴급통화조치가 단행됐다.
◆1년 새 두 번 발행된 15주년, 16주년 우표
1960년 15주년으로 발행된 우표에는 태극기를 흔드는 남녀의 모습이 민족적 자긍심을 높이고 있다.
▲ 광복 15주년 기념 우표, 광복 16주년 기념 우표
이듬해인 1961년에도 기념우표가 나왔다. 16주년이라 기념우표가 발행이 다소 이례적인데 당시 정치적 상황이 때문에 대대적인 광복절 행사를 했다고 한다.
1960년 5월 16일날 발생한 ‘5.16 군사쿠테타’로 장면 정부(2공화국)가 무너지면서 당시 박정희 소장이 주도하는 국가 재건최고회의가 최고 권력기구로 떠오른 때였다.
이때 발행된 기념우표에는 한반도에 동서로 놓여있는 쇠사슬이 남북 분단을 상징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발전상을 담은 20주년, 30주년 우표
1965년 발행된 20주년 우표와 1975년 발행된 30주년 기념우표는 빠르게 커가는 대한민국 국력을 담았다. 당시는 1962년 시작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따라 연평균 10% 이상의 고속 성장을 달성하는 시기였다.
▲ 광복 20주년 기념 우표, 광복 30주년 기념 우표
20주년 기념우표에는 태극기와 함께 공업화를 상징하는 공장 건물과 굴뚝 등의 그림을 담았다. 우표가 나온지 2년뒤인 1967년 국내 최초의 고로(高爐:용광로) 업체인 포항제철 기공식이 열렸다.
10년뒤인 1975년 발행된 광복 30주년 우표에는 당시 경제발전의 성과를 담았다. 공장 그림과 함께 1970년 개통한 경부고속도로, 통일벼를 형상화한 그림을 그려넣었다.
1968년 공사를 시작해 70년 완공된 경부고속도로는 대한민국 물류를 혁명적으로 바꾼, 한국 경제발전의 일등공신이다. 경부고속도로 완공이후 서울과 영남권이 1일 생활권에 접어들면서 교통과 물류의 혁명을 일궈냈다.
통일벼는 대한민국을 보릿고개에서 벗어나게 한 한 효자 상품이었다. 1960년대 후반 서울대 허문회 교수가 필리핀에 파견갔다가 개발한 품종으로 72년부터 전국에 확대 보급됐다. 통일벼 보급이후 쌀 수확량이 크게 늘면서 1977년 쌀의 완전한 자급이 가능해졌다.
◆통일이 담긴 80년대 우표
1981년 광복 36년 주년 기념우표가 나왔다. 일제의 식민통치가 36년간 계속됐다는 점에 착안해 광복 36주년 기념행사가 대대적으로 열렸다. 5공화국이 출범하던 첫해였던 81년에는 여러 가지 행사가 많았다.
1980년대 우표부터는 통일에 대한 관심을 담고 있다.
▲ 광복 40주년 기념 우표, 50주년 기념 우표
광복40주년(1985년)우표는 백두산 천지와 무궁화 꽃을 실으며 통일을 지향하는 민족의 자세를 표현했다.
전두환 정권시절 당시는 남북 관계에서 주목할만 이벤트가 있었던 해다. 1983년 6월 30일부터 11월14일까지 KBS가 주관한 이산가족 찾기행사에 온 국민이 눈물을 흘리자 전두환 대통령은 85년 광복 40주년을 기념해 분단 이후 최초로 이산가족 남북 고향방문을 추진했다.
협상에서 난항을 겪었지만 결국 추석을 앞둔 9월 20일 각각 151명으로 구성된 양측 이산가족이 서울과 평양을 3박4일씩 방문해 감격적인 고향 방문을 했다. 반유신운동의 선봉에 섰던 초대 원주교구장이었던 지학순 주교가 이 때 평양에서 누이동생을 만나는 장면이 방송되면서 많은 이들이 눈물을 흘렸다.
김영삼 정부 시절이던 1995년의 광복 50주년 기념우표에는 ‘통일로 미래로’라는 문구와 함께 백두산 천지 사진을 실었다. 1년전, 1994년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이 열릴 예정이었지만 김일성 주석의 급사로 최초의 남북정상회담은 6년 뒤인 2000년에나 열렸다.
◆2000년대 우표
노무현 정부 때인 2005년 발행된 광복 60주년은 ‘광복 60년, 새로운 시작’이라는 문구를 쓰면 미래 지향적인 모습을 담았다. 이 해는 일본이 강제로 우리나라 외교권을 박탈한 을사보호조약이 있은지 100년이 된 해이기도 했다. 이를 감안해 이때 기념우표에는 임시정부 청사와 광복군의 모습이 담겼다.
▲ 광복 60주년 기념 우표
◆국민적 인기 끈 광복 기념주화도
기념주화도 간간히 나왔다. 광복 30주년과 50주년, 60주년에 기념주화가 나왔다.
▲ 광복 30주년, 50주년, 60주년 기념 주화
1975년 광복 30주년때 나온 기념 주화는 독립문과 유관순 열사가 디자인됐다. 무려 500만 장을 발행해 당시 많은 국민들이 소유하며 국민기념 주화로 대중적 인기를 모았다.
광복 50주년 기념주화는 안중근 의사 초상이 들어간 1만원 액면 기념주화의 경우 은 90%, 구리 합금 10%로 제조됐다. 김구 선생 초상이 들어간 니켈화는 액면 5000원 권이었다.
광복 60주년 기념주화는 어른과 아이가 서로 손을 잡으려는 형상을 앞면에, 광복60주년 엠블렘을 뒷면에 디자인돼 발행된 은화이다. 단일 기념 주화로는 국내 9만 개, 국외 1만 개 발행으로 광복 30주년 기념 주화 이래 역대 최대 발행량을 기록했다.
◆광복 70주년 기념우표와 주화는?
▲ 광복 70주년 기념 우표, 주화
이번에 발행된 광복 70주년 기념우표는 백범 김구(1876~1949)의 ‘통일의 꿈’이 만들어졌다.
“네 소원이 무엇이냐”하고 하느님이 내게 물으시면, 나는 서슴지 않고 ’내 소원은 대한독립이오‘하고 답할 것이다.......
한국광복군의 통수권자였던 백범 김구와 한국광복군 서명문 태극기를 소재로 해 독립의지와 자유에 대한 염원을 담았다. 광복 70년을 쉽게 연상할 수 있도록 숫자 70을 형상화 우표에 담았다.
이번 광복70주년에는 기념주화도 나온다. 금메달 2종류와 은메달 4종류가 발행된다.
금메달은 ‘광복 70주년 기념’을 모티브로 ‘70’의 숫자에 70년간의 년도를 나선형으로 표현해 대한민국의 나이테를 형상화한 디자인(31.1g 순금메달)과 하나의 씨앗에서 성장한 나무가 다시 씨앗을 흩뿌리며 발전하는 대한민국을 형상화한 디자인(15.5g 순금메달)을 도안했다.
4종 세트로 출시된 31.1g 순은메달 세트는 한국조폐공사에서 출시했던 기존 ‘한국위인 100인 동메달 시리즈’의 도안 중 가장 대표적인 독립위인 4인을 선정해 김구 선생, 김좌진 장군, 유관순 열사, 안창호 선생의 모습이 들어간 메달을 99.9% 순은(純銀)으로 재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