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한 편의 詩

11월 /이해리

뚜르(Tours) 2018. 11. 12. 06:55

 

 

11

                               이해리

 

 

끝끝내 닿지 못할 막막함으로

적당한 거리를 두고 서 있는

달력 속의 날짜, 11

산막처럼 텅 빈 글자의 행간으로 가을은

차츰 침묵의 심지를 낮춘다

 

거리에 나서면 바람이 끌다버린 나뭇잎 우수수

목조 벤치 아래 굴러 다니고

아직 채 옷깃 여미지 못한 목덜미 속으로

방촌역 차단기 앞에 멈춰 선 저녁 안개 감겨온다

 

시간이여 계절이여

꿈꾸었던 것들과 제때에 닿는 일 드물고

모든 소원하는 것들은 뿔뿔 흩어지거나

뒤늦게 이루어졌다

 

홑이불처럼 가난한 마음 위에

누덕누덕 그리움만 차오르고

빈 수레 가득 흰 이슬 날리며 바람떼는

어느 멀고 나지막한 마을로 떠나간다

 

바닥 드러낸 등잔처럼 희미한 내 그림자

막다른 골목처럼 서늘히 서 있는데

 

 

- 시집 <철새는 그리움의 힘으로 날아간다> 나남출판.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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