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한 편의 詩

누가 아프다는 이야기를 듣는 저녁​​​​ / 문신

뚜르(Tours) 2024. 2. 16. 17:36

 

 

누가 아프다는 이야기를 듣는 저녁​​​​  / 문신

 

 

누가 아프다는 이야기를 듣는 저녁이다​

공단 지대를 경유해 온 시내버스 천장에서 눈시울빛 전등이 켜지는 저녁이다​

손바닥마다 어스름으로 물든 사람들의 고개가 비스듬해지는 저녁이다

다시, 누가 아프다는 이야기를 듣는 저녁이다

저녁에 듣는 누가 아프다는 이야기는

착하게 살기에는 너무 피로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하나씩의 빈 정류장이 되어 있을 것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다

시내버스 뒤쪽으로 꾸역꾸역 밀려드는 사람들을 보라

그들을 저녁이라고 부른들 죄가 될 리 없는 저녁이다

누가 아파도 단단히 아플 것만 같은 저녁을 보라

저녁에 아픈 사람이 되기로 작정하기 좋은 저녁이다

시내버스 어딘가에서

훅,

울음이 터진들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을 저녁이다

이 버스가 막다른 곳에서 돌아 나오지 못해도 좋을 저녁이다

- 계간『시인수첩』, 2019 가을호

'이 한 편의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누가 /정병근  (0) 2024.02.18
2월 /이남일  (0) 2024.02.17
초 겨울비 /박동수  (0) 2024.02.15
행복 나무 / 정채균  (0) 2024.02.14
겨울강 / 오탁번  (0) 2024.0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