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한 편의 詩

아, 4월인데 /신현수

뚜르(Tours) 2024. 4. 9. 12:34

 

 

아, 4월인데  /신현수

―항암일기․2

 

아우 혁소가 보내준 시집

‘아내의 수사법’을

아내가 누워 있는

병원 침대 옆에서 읽는다.

겨울을 살아낸 나무들이

새순을 틔워낸 것을 보면서

나무들이 길을 잃지 않으려고

가지 끝마다 연둣빛 등불을 하나씩 단 것 같다고

혁소 아내가 말했다는데,

그럼 나는 거꾸로

남편의 수사법으로 한 번 말해볼까?

나와 지난 30여 년을 살아 낸 아내가

스님보다 더 푸르게 머리를 박박 깎고

누워 있는 것을 보면

지난 30년 동안 나는 거미 새끼처럼

아내의 살을 파먹고 살아온 것 같다.

병실 창문 밖으로 내다보이는 산에는

4월인데,

연둣빛 새순도 보이지 않고

4월인데,

개나리 진달래도 보이고 않고

윙윙, 바람 소리만 병실 창문을 뒤흔든다.

시집을 다 읽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아내를 홀로 병실에 두고

병원 언덕을 내려온다.

4월인데,

얼굴 아프게 차가운 바람은

병원 언덕을

윙윙, 소리를 내며 쳐들어온다.

4월인데,

아직도 벗지 못한 겨울 검정코트 깃을

목까지 바짝 추켜올린다.

건널목에 서니

학교 앞 철교 위로

덜커덩 덜커덩, 기차가 지나간다.

기차 지나가는 소리가

저렇게 슬픈 소리였었나?

건널목에 서서

덜커덩 덜커덩, 기차소리를

몇 번이나 더 들어야

아내의 병은 나을까?

아, 4월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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